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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May 23. 2019

엄마밥상

숲 모임. 스무명이 가져온 음식을 쓱 비볐다.


내 고향은 전북 전주다. 속설이기도 정설이기도 한 군침도는 음식맛의 고장이다. 먹고사는 일이 중한 것은 살면서 사무치게 각인된다. 지금껏 내가 사람 노릇 할 수 있었던 공덕의 전부는 내가 받았던 엄마의 밥상이다.


내 엄마는 제주도 섬처녀였다. 삼대독자인 남편을 맞아 줄줄이 애들을 낳아 길렀던 엄마에게 매끼 밥상은 정답이 없는 수학문제같았단다. 나 고등학교 때 젤 어려운 게 수학이었는데 늬 아빠 밥상 차리는 일이 딱 그랬어 으휴, 라면서 엄마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던 어떤 날. 나같으면 수학 푸느니 밥상 차렸겠다 하면서 까르르 웃었다 나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빠는 엄마를 존중했으되 살가운 남편은 아니었다.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던 날 엄마 손을 더듬더듬 찾아 쥐고는 '그동안 나랑 살아줘서 고마웠다'고 한 게 아빠의 마지막 러브레터였다. 숨이 넘어가기 전 한달 동안은 엄마를 무던히도 괴롭히셨다. 살면서 견결했던 성품은 간데없이 갖은 신경질을 부리면서 엄마가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여보 정 떼려고 그러지? 내가 미워서 그러는 거 아니지? 엄마는 어느새 반신불수로 누운 아빠의 이마를 연신 쓰다듬으며 울었다. 낮고 긴 엄마의 울음이 새어나올 때마다 형제들은 거실에서 묵묵하게 고개를 떨궜다.


 지난주 아빠 19주기 기제사에서 엄마는 희미하고 먼 눈으로 아빠의 제삿상을 바라보셨다. 상에는 생전에 아빠가 좋아하셨던 음식들이 놓여있었다. 아들에게 제사를 물려줬지만 남편이 생전에 좋아했던 수육, 조기구이는 이날도 손수 챙기셨다. 당신이 먼저 술잔을 올린 다음 아들 딸 며느리의 재배가 이어졌다. 미동없이 제삿상을 바라보던 엄마가 조용히 상 앞으로 가더니 젓가락을 들어 도라지나물 위에 올려놓으셨다. 거기서는 담배 피지 마시우, 엄마의 마른 눈이 젖어올랐다. 살수록 팍팍한 세월에 남편의 부재가 사무친 까닭일까. 도라지가 폐에 좋다더라, 엄마가 눈물을 닦으며 물러나왔다. 우리는 짐작할 뿐이었다. 엄마가 얼마나 아빠를 좋아했는지. 팔순이 넘도록 기억되는 부부의 굽이진 세월이 어땠을지.


철상(제삿상을 철수함)합시다, 장남의 멘트와 함께 일사천리로 음식들이 모아지고 분류된다. 모두 모여 제사음식과 술을 나눠 먹는 음복은 특히나 우리 가족에겐 빠지지않는 의례다. 조상이 드신 음식을 먹어야 복이 온다는 토속신앙 때문이다. 살펴보건대 젯상에는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보다 남아있는 후손들이 즐겨먹는 음식들로 채워진다. 결국 식성은 대를 이어 닮아가기 마련이다.


생전에 입맛 까다롭던 아빠는 유일하게 엄마의 밥상만 좋아하셨다. 곱게 자란 양념딸이 공무원인 당신에게 시집와 가정을 일구기까지 아침저녁으로 받았던 밥상에는 부부의 역사가 아로새겨졌을 터다. 그 밥상을 새끼새처럼 입벌려 받아먹었던 형제들은 어느새 앞서거니 뒤서거니 빼도박도 못하는 중년이 되어간다. 아빠 기제사때 엄마가 챙겨준 시래기를 된장에 지지는 밤. 이렇게 맛난 거 먹고 무럭무럭 컸구나 나는.


아빠에게만 허락된 '계란+들기름+꿀 뚝배기'를 나르던 이른 아침, 아빠가 좋아하는 꽃게탕으로 배가 불렀던 어느 저녁, 아빠가 자랑스레 인심썼던 김장김치, 아빠 손님들에게 내갔던 각종 화전과 튀김과 빵들... 모두 엄마 밥상의 주전선수들이었다.


나는 엄마가 생전의 아빠보다도 우악스럽고 야무지게 매끼 진지드시기를 바란다. 귀찮아서 검은콩 스무디만 먹고 있노라는 수화기너머 엄마 목소리는 내게 아프다. 내려가서 매 끼니마다 돌봐드리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낙향을 꿈꾼다. 아빠를 일찍 여읜 만큼 엄마는 할 수 있는 한 오래 모시고 싶다. 희미하고 먼 눈으로 남편의 제삿상을 바라보는 날이 앞으로도 길게 남았기를 바란다. 그 밥 먹고 뼈와 살을 갖춘 은덕은 나 살아생전에 갚을 수 있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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