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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May 25. 2019

오늘까지는 봄밤


아프다는 것은 병이 스밀만큼 처한 지경을 만끽하거나 좋아한다는 뜻일 거다. 힘껏 애를 쓰고 땀흘린 다음 몸살이 걸리거나, 너무 좋아하는 사람은 그림자마저 못본척 하고 싶은 것처럼 내겐 봄밤이 그렇다. 좋아서 아끼는 마음으로 저어한다. 경계한다. 멀리 두고 본다. 


그러다가-

못참겠어서 매일 밤 아 진짜 또 너냐 라면서 밤공기를 쐬러 나간다. 오늘은 정말 안나가고 싶었던, 그러나 가만히 거실에 앉았으려니 마음이 둥실 떠올라 진득하니 눌러야하겠던, 한들한들 가볍게 입고 스윽 밤마실 댕겨오고싶던... 그러한 심정. 


3월이 민들레 애기똥풀 괭이밥 등등 낮게 피는 노란꽃의 시절이었다면 4~5월 이맘때는 하얀꽃의 천국이다. 마가목, 찔레꽃, 산딸나무, 층층나무들이 하얀 꽃을 피워낸다. 밤에 만나는 백색 엑스타시다. 간혹 라일락, 붉은병꽃, 분홍아카시 같은 것들이 고개를 내밀지만 흔치 않다. 4월과 5월사이엔 그저 하얀전쟁이 지천이다. 이제 곧 장미의 계절이 올 터, 무릎 꿇듯 꽃잎 접어야 할 날이 머지 않은 까닭이다.   


걸쇠 걸어잠그는 심정으로 마지막 봄밤을 누리러 나간다. 쪼리 끌고 땡땡이 헐랭이바지 차림으로- 

더운김 훅훅 난다해서 그새 춘심을 접지는 말자고 어스름 저녁을 누비는, 오늘까지는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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