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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은영 Jun 22. 2019

아이고 배야

내가 내린 결정들과 그로 말미암은 주변의 결정들이 모여서 오늘의 내가 된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몸을 트는 동안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져서 내처 눈을 떠버리는 요즘- 그 중 어떤 날은 거실로 나가 수명을 다한 공기인형처럼 소파에 푸시식 쓰러져 티비를 켠다. 시간을 잊은 채 묵음의 화면을 눈알이 콕콕 쑤실 때까지 응시하다가 극도의 피로에 절어 방으로 들어온다. 오늘 아침처럼.


한창 맛있을 때를 지나 폐사를 향해 달려가는 밭작물들을 구하러 일복을 입고 나선다. 농장 아저씨가 병든 오른쪽 팔로 뒷짐을 지고 왼팔을 흔들며 다가온다. 농사의 ㄴ 자를 모르면서 게으르기까지 한 도시 여자란 농사 멘스플레인 당하기에 최적화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을 다듬고 있건 내가 만지고 있는 작물이 최대의 위기라는 식의 태걱정마저 맞춤형이다. 잔소리하고 간섭하는 재미로 주말농장을 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오늘은 웃자란 가지를 보더니 아저씨 고개가 절레절레 돌아간다. 순제거 작업을 안해서 열매 달리는 시기가 늦어진 것도, 물 주기 전에 땅을 두둑하게 북돋아주지 않는 것도 걱정이다, 아저씨는.  내 작물을 걱정하는 건지 잔소리가 즐거운 건지 알수 없다, 나는.


밭일 다녀오면 이상하게 기운이 난다. 엄마는 기분따라 들썩거릴 게 뻔하니 애먼 땅에 농작물들 죽이지 말고 책이나 한 자 더 읽으라셨지만- 사실은 그 말이 백번 맞지만- 삐죽삐죽 기세좋게 올라온 잡초들을 보면서 순순히 일어섰다. 잡초에게 옆구리가 밀린 쑥갓이 눈에 밟혔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허기는 둘째치고 배가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


집에 와 떡국을 끓였다. 육수를 녹이고 일년에 한 봉지 먹으면 많이 먹는 만두도 오늘은 두 알 넣었다. 습관처럼 넣은 소금이 문제였나보다. 육수에 이미 간이 돼 있는 줄을 몰랐던 건데, 이미 간이 짰지만 배고프고 배아픈김에 한 그릇을 다 먹고는 종일 허리를 펼 수 없었다. 약국에서 받아온 진경제는 공복에 먹어둔 터라 남용할 수 없었고, 소금기에 바짝 성이 난 위장은 평화를 모르고 요동쳤다.

이런 날 이런 순간의 결정은 왜 늘 엇박자인가. 위기의 순간, 스트레스의 한 복판에서 번번이 패착을 두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이다. 신중하고 올바(르다고 생각되는)른 결정이 이 상황을 끝내주지 못하면 어쩌나, 그 결정이 나를 배반하면 어쩌나, 최선이 아니라면 나는 나는 어쩌나.

하여 미지근한 보리차를 마셔도 시원찮을 판에


나는

커피를

마셨다.


카페인이 듬뿍 든 케냐더블에이를 진하게 갈아서.


위장은 날카로운 통증으로 내 결정을 저주했고 덩달아 장까지 날뛰었다. 이럴 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왜 그랬지. 급성위경련으로 응급실에 다녀온 지 4일된 자의 경거망동이라니.

 

그리하여 충동적이고 경박하기 짝이 없는 오늘의 결정은 나를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으로 가득할 내일로 데려간다. 새벽에 또 잠에서 깨어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몸을 틀다가 배를 쓸면서 눈을 더욱 꼬옥 감겠지. 나무아미타불 아이고 배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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