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감정에 직면하는 그림

불안, 우울, 두려운 감정을 삼켜버리는 사람들에게

by 고윤영
뭉크_죽음.jpg Munk 병실에서의 죽음(Death in the Sickroom) 1895


최근 가까운 지인의 부고 소식을 듣고 마음이 힘들었다. 지인의 배우자의 죽음이었는데 남겨진 어린 자녀들, 보고 싶다 그립다고 말하는 유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죽음’이라는 단어를 꺼내보았다. 안녕, 이별, 헤어짐이라는 말로는 죽음이라는 단어의 깊음을 다 담을 수 없을 것 같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눈물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공포감도 느껴진다. 죽음 그 이후의 삶을 그 누구도 경험해 보고 고백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뭉크의 그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스산함, 슬픔, 우울함이 보는 내내 그리고 보고 나서도 여운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죽음이라는 주제의 그림을 일부러 찾아보며 뭉크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7명으로 보인다(침대에 고인이 된 1명). 가장 먼저 눈이 가는 인물은 나를 바라보고 눈이 마주친 정면의 여인이다. 퀭한 눈으로 무표정하리만큼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집에서 일하던 사람이었을까? 간병인? 죽은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일까?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 그림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하는 인물의 존재는 조금 독특하다.(뭉크의 감정이 들어간 인물은 아닐까? 겁에 질린 아이의 모습 같은....)

그림의 가장 앞쪽에 머리를 땋은 소녀의 모은 두 손에서, 죽은 이의 곁에 감히 다가서지 못해 어쩔줄 몰라하는 둥그렇게 말린 어깨에서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림 속 누구의 울음도 들리지 않는 듯 하다. 마치 음소거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슬픔을 마음껏 소리내어 울지못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요즘의 우리 현실과도 비슷해 보인다. 행복하고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어 하는 sns세상 속의 모습이 연상된다. 우울하고 슬프고 괴롭고 힘든 것은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의 마음. 슬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유치하고 어른답지 못하며 성숙하지 못하다는 인식. 감정에는 긍정도 부정도 없는데 우리는 이것을 ‘부정적 감정’이라는 이름으로 마음 저 구석에 꼬깃꼬깃 숨겨버리거나 대체할 만한 다른 것으로 눌러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숨겨둔 감정은 연관된 무엇과 만나는 지점에서 다시 솟구쳐 올라오는 스프링과 같다. 바람이 든 풍선의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과 같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슬픔의 감정을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슬픔을 삼키다?

그림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슬픔을 입안 가득 삼켜버려 목구멍까지 그것으로 가득 채운 모습같다. 나의 감정이 슬픔을 공유하는 가까운 이들에게 전이시킬 것 같은 두려움, 터져버린 눈물은 곧 복구되기 어려운 수도꼭지가 될 것 같은 난처함, 내가 표출한 슬픔은 몇 배로 커진 눈덩이처럼 나를 덮쳐버릴 것 같은 괴로움 등으로 슬픔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삼켜버린 눈물과 슬픔은 시간이 흐르면 우리에게 역류하는 강물처럼 위험한 감정이 되어 돌아 온다. 특히나 애도와 같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는 사건은 그것을 적절하게 다뤄주지 않을 때 인생의 여러 지점, 누군가와의 만남, 사건에서 다시 마주하기 쉽다.


그들에게 결코 시간이 약이다. 그것을 잊을 만한 다른 일을 가져보라. 바쁘게 지내보라와 같은 섣부른 말로 위로하지 말자. 그 누구도 그들이 되어 똑같은 아픔과 고통을 느낄 수 없다.




뭉크는 가족의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 슬픔과 눈물을 쏟아낼 수 없었지만 그림 속에서 비로소 감당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드러냈던 것같다. 그림만이 유일하게 그가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매체이고 통로였고 친구였을 것이다. 뭉크의 그림이 아름답다고 느껴지지는 않을지라도 우리가 숨기고 싶어 하고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던 ‘죽음’이라는 사건과 그것을 느끼는 우리의 감정이 결코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죽음이 삶의 ‘끝’이라고 느끼는 순간 그것은 너무 슬프고 힘든 일이지만 뭉크에게는 적어도 죽음이 삶의 ‘과정’중 하나라고 느끼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죽음은 모두가 겪는 일 그러니까 그것을 잊으려 해도 잊어서는 안되는 잊지 말아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가 느끼는 어떤 감정에 휩싸이는 것은 경계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느껴지는 감정을 결코 터부시하는 것도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감정을 돌보는 역할 그것이 예술의 역할이 아닐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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