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가을 루프탑 콘서트 후기
퇴근길, 횡단보도 중간 지점에 멈춰서서 대로변을 촬영하는 외국인이 보입니다.
여행자인가봐요! 뭘 찍었을까요?
그 지점에 따라 멈춰서서 사진을 찍어봅니다.
저에겐 익숙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특별한 여행의 순간이겠죠?
그 시선과 기분을 따라 길을 걸어봅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 선릉역 7번 출구 근처에 위치한 최인아책방 입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즐길 수 있는 루프탑 공연이 준비되어 있어요.
입구에 다다르면 은근한 설렘이 느껴집니다.
오늘은 어떤 공연이 펼쳐질까요?
올 가을 루프탑 콘서트를 통해 재즈와 탱고의 세계로 초대 받았습니다.
재즈와 탱고 공연을 제대로 본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두번 다 음악을 통해 여행을 다녀온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9월 22일은 송인섭 재즈 트리오와 함께한 날!
음표보다는 쉼표에 집중하며 여행과 사람, 기억을 표현하는 팀입니다.
"음표보다 쉼표에 더 많이 집중하고, 노력한다."는 소개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요즘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과 결이 같아서요.
리더인 송인섭 베이시스트가 진행도 직접 했습니다.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엠씨 경험이 있어서 자연스럽고, 편안했어요.
재밌기도 했어요. :)
'바람'을 주제로 한 곡이 두 곡 있었는데, 바람을 좋아해서 그렇대요. 그렇지만 바람은 안 핀대요. 허허
표정을 굳어져야 마땅한 아재개그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능청스러움을 좋아해요. ㅋ
덕분에 몸에 힘을 풀고, 얼굴 힘도 풀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어요.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해 보기도 하고, 건물을 멍하니 바라보며 들어보기도 했어요.
위의 곡은 'Just to say'라는 곡인데, 가장 마음에 와닿았어요.
송인섭 베이시스트는 멀리 네덜란드에서 공부하면서 가까웠던 사람들과 어느 순간 멀어진 기분이 들었대요. 멀어진 거리 만큼 마음의 거리도 어쩔 수 없이 멀어졌던거겠죠.
멀어졌던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 한 통화를 하고서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서 자세한 설명에 대한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하네요.
그래도 그 날 느꼈던 감정은 생생합니다. 차분하게, 용기내어, 보고싶은 사람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게 만들었던 노래였어요. 마침 생각났던 오랜 친구도 있었구요. 덕분에 그날 떠올렸던 친구를 직접 찾아가 얼굴을 보았다는 훈훈한 소식! :D
요즘 제 플레이리스트에는 송인섭 재즈 트리오의 곡이 들어있답니다.
Just to say와 함께 Wind of summer, 10월 23일, 못새의 노래를 자주 들어요.
가을 날씨하고도 참 잘 어울려요. 긴장을 풀고, 느긋하게 쉴때 듣기도 참 좋구요.
특히 10월 23일 같은 곡은 송인섭 베이시스트가 어떤 날이었는지 비밀이니, 각자의 경험에 빗대어 들어보라고 했어요. '어떤 날이었을까? 나에겐 어떤 날이 떠오르지?' 상상하며 듣는 것도 재미있더라고요.
재즈는 '테마+솔로+테마'를 기본 구조로 연주하는데 관객의 반응에 따라 즉흥적으로 달라지는 묘미가 돋보이는 장르가 아닐까 싶어요. 들을 때도 그때 그때의 감정에 따라 다르게 와닿는 것 같기도 해요.
음악을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딘가로 잠시 다녀온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어디였을까요? 마음 속 깊이 가닿고 싶은 곳,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
두번째 루프탑 콘서트는 추석 연휴의 시작이자, 9월 마지막 날인 30일에 열렸습니다. 반도네오니스트 레오정과 함께 하는 날!
예전부터 최인아책방에 오고 싶어했던 울매님과 함께 책방 데이트 했어요.
책방 구경도 하고, 책을 읽다가 루프탑으로 올라갔습니다. 역시나 울매님도 이 공간을 좋아하네요!
책방은 4층이고, 한층 더 올라가면 루프탑이 나옵니다. 간단한 다과가 준비되어 있는데, 추석을 맞아 송편도 보이네요.
루프탑 콘서트는 송영민 피아니스트와 최인아책방이 함께 기획 및 진행합니다.
"맑은 기운을 가진 여러분, 탱고를 아십니까?"라는 레오정 선생님의 재밌는 멘트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시작부터 격렬하게 열정을 뿜어낼거라 기대했는데, 실제로 느껴본 탱고 음악은 분위기가 좀 달랐어요. 차분하고, 우울한 느낌도 없지 않아 느껴지네요.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정서에 '한'이 있듯이, 아르헨티나 사람들 삶의 민속문화인 탱고는 이민의 역사 속 그들의 애환이 담겨있다고 해요.
그러나 한을 표현하는 방법이 우리와는 달랐대요. 우리나라는 갈라지는 소리로 슬프게 표현했다면, 남미에서는 더욱 열정적으로 남녀가 사랑하고,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것처럼 적극적으로 상상하며 표현했다고 해요.
공연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송영민 피아니스트가 중간중간 부드럽게 이끌어 주셨어요.
반도네온이라는 낯선 악기를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답니다.
아코디언과 비슷한 악기 같은데, 차이점이 뭘까요? 레오정 선생님은 아코디언은 사랑을 하는 여자의 목소리, 반도네온은 사랑을 잃은 여자의 목소리에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하셨어요.
뭘까요? 무슨 의미일까요?
아직은 악기도, 음악도 익숙한 듯 낯설게 느껴지네요. 낯설지만 매력있는 반도네온 연주를 들어보는 시간이었어요.
한국 최초의 반도네오니스트 레오 정(Leo Jung)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고 해요. 그러던 어느 날 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입원해서 지난 날을 돌아보니 지금까지 열심히 살기는 했지만 색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해요.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정리하고, 아르헨티나로 가서 반도네온이란 악기를 배우셨고,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반도네오니스트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열정 넘치고, 용기 있는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어요.
익숙한 듯 낯선, 비발디와 피아졸라의 사계가 오묘하게 어우러진 레오 정 선생님의 사계 중 겨울 한번 감상해보세요. :)
https://youtu.be/abJUZWBLg2s?list=PLC_dPdB04ix3I7UwgA24cVOLnNzOp5ect
최인아책방답게 책방마님이 공연과 어울리는 책을 소개하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 (박지호)와 '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손미나) 두 권을 추천해주셨어요.
추석연휴에 남미로 여행을 떠난 친구와 선배가 있어서 부러워하던 참이었는데, 남미 여행에 관한 책을 소개해주시네요.
울매님과 10월까지 책을 읽어보고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책을 통해 남미에 대해 알아가고, 공연의 여운을 더 오래 음미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우리 서울 여행을 넘어서 남미 여행도 함께 간다면 좋을 것 같아요. 히힛,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건물 사이로 칼바람이 부는 잿빛 도시'라는 강남에 대한 이미지가 최인아 책방이 생긴 이후로 조금씩 바뀌기 시작하네요.
여행하듯 책방을 찾게 되고, 음악과 책을 통해 더 멀리 책과 음악이 이끄는 곳으로 다녀오는 듯한 기분이예요.
혼자 있는 시간에는 음악과 책에 많이 의지하고, 기대는데 이전에는 몰랐던, 다양한 음악과 책을 만나게 되는 것도 반가워요. :D
올해 루프탑 콘서트는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내년 봄에 돌아온다고 합니다. 앞으로는 실내에서 클래식 공연이 있을 예정이예요.
공연 소식은 이곳에서 확인하세요!
https://www.facebook.com/choiinabooks/posts/1841009639562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