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라는 속도에 비하면 어른들이 나이 드는 속도는 참으로 느린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를 보고 있으면 하루만큼 자라고, 자면서도 자라고, 매일 보고 있어도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는 걸 실감합니다. 고개를 가누고, 뒤집기를 하려고 애쓰던 게 엊그제 같은데 모터가 달린 듯 기어 다니더니 다리에 힘을 주고 서기 시작했습니다. 서랍장이나 의자를 붙잡고 일어섰다 앉기를 끝없이 반복하다가 꽃게처럼 옆으로 한 발짝씩 발걸음을 뗐습니다. 그러다가 벽을 잡고 일어서고, 한 손을 떼고 서 있을 정도로 다리에 힘이 생겼습니다.
그 후 어느 순간부터 붕붕카를 붙잡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습니다. 정말이지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신랑이 퇴근 후 지윤이와 놀아줄 때 걸음마 보조기에 발을 걸치길래 넘어지지 않게 받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갑자기 걸음마 보조기를 밀면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발걸음 떼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힘 있게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더군요. 육아로 지쳐 누워있던 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와, 진짜 신기하다! 잘 걷네? 그것도 갑자기!
그동안 걷는 능력을 숨겨온 것처럼 발걸음을 내딛는 아이가 신통하고 기특해서 기운이 벌떡 났습니다. 지윤이도 걷는 게 재미있고 뿌듯했던지 이제는 기어 다니지 않고 계속 걸으려고 합니다. 걸음마 보조기가 밀려서 넘어질까 봐 오리걸음으로 뒤따라 다니면서 폭풍 칭찬을 하느라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아이들은 한번 무언가를 시작하면 절대로 되돌아가지 않습니다. 부단히 연습하고 반복하면서 다음 단계로 도약합니다. 아이의 시계는 째깍째깍 부지런히 앞으로 가고 있습니다.때로는 육아로 힘들어도 아이의 모습을 보며 크나큰 행복을 느끼고 힘이 나는 부모의 시계도 아이를 따라 강물처럼 빠르게 흐릅니다.
신생아 시절 대부분의 시간을 자던 아기는 기고, 걷고, 뛰기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땅에서 멀어지려고 합니다. 반대로 나이가 들수록 앉아 있고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땅과 가까워집니다. 그러나 아기와 노인을 보면 비슷한 부분이 참 많습니다. 이 없이 잇몸으로 음식을 씹을 때, 대소변을 갈아줄 때, 걸음마 보조기를 잡고 걷는 모습을 보면서 "지윤 할머니~"라고 장난치기도 합니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아기처럼 변해가는가 싶기도 합니다.
평소에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만한 계기는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을 받아들이고 위로하기는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존 무스의 《설탕 한 컵 / 존 무스 글. 그림》이라는 그림책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 우화 중 '겨자 씨 이야기'로 불리는 키사 고타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따듯한 그림체와 함께 죽음을 어렵지 않게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줍니다.
애디는 둘도 없는 친구인 고양이 트럼펫을 불의의 사고로 어느 날 갑자기 잃게 됩니다. 팬더곰 스틸워터에게 찾아가 애디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묻습니다. 스틸워터는 설탕 한 컵을 가득 채워서 가져오면 필요한 약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아무도 죽지 않은 집'에서 설탕을 얻어야 합니다. 애디는 종일 이 집 저 집을 찾아다니지만 다들 소중한 이를 잃어본 경험이 한두 번쯤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결국 설탕을 얻지 못하지만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여전히 슬프지만 고양이 트럼펫이 언제나 함께하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저 또한 사랑하는 할머니를 떠올려보면 죽음 이후에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더 이상 없다는 점이 여전히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가끔 하늘을 올려다보면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하고 계신다고 느낍니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더욱 소중해지고, 곁에 있는 사람들을더 사랑하게 해 줍니다.혹시 주변에 죽음과 상실로 슬퍼하는 이가 있다면 조용히 이 그림책을 건네주면 어떨까요? 곁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주면 가장 큰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