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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댁 Apr 13. 2023

눈물은 몸의 언어이다

눈물은 몸의 언어이다.

두렵다는 핑계로 피하지 않고 나의 감정을 만나는 시간은 필요하다.

17년이 지나서라도 말이다.


2023년 4월 7일, 이틀 정도 봄비가 내린 후 맑은 하늘에 햇살이 따뜻한 어느 금요일이었다. 부서원들과 점심을 먹은 후 그냥 들어가기엔 아까운 날씨라는 생각에 혼자서라도 좀 걷고 싶었다. 머리를 식히거나 쉼이 필요할 때 회사 건물을 한 바퀴 빙 도는데, 길 양쪽에는 나무가 잘 심어져 있다. 마침 새순이 돋아나는 시기라 좋아하는 연둣빛 나무와 오후의 봄햇살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어딘가로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무슨 일이지?'하고 까치발을 들고 살펴보니 회사 건물 앞에서 경찰이 시신을 중심으로 라인을 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빌딩 청소 중 안전사고가 있었던 건 아닌지 빌딩의 꼭대기와 바닥을 번갈아보며 살펴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수군거림은 청소하시는 분들의 안전사고가 아닌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을 벗어나 점심을 즐기고 산책을 하는 시간에 시신을 빠르게 옮기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뭐지? 무슨 일이야?' 하는 질문만 계속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정문으로 들어와 보니 빌딩 안에서는 사고 현장이 노출되지 않도록 가림막으로 가려져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가서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딘지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팀장님께 사고 소식을 공유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눈앞에 놓인 일에 집중해야 했고, 처음엔 어려웠지만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30대 남성이 건물 옥상에서 투신해 사망했고, 직원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혹시 내가 아는 직원은 아닐까 불안했다. 주변에서 사고 관련 이야기하는 소리에 레이더망이 곤두섰다. 언뜻 이름도 들려서 검색해 보니 지인은 아니었다. '무슨 일일까? 어떤 사연이 있길래 회사에서, 그것도 사람들이 많은 점심시간에 그런 사고가 있었던 걸까?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마음을 맴돌았다. 구체적인 이유는 끝까지 알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왜'라는 질문이 가장 먼저 마음속에 가득 차올랐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시부모님 댁에 방문해서 가족들과 함께 주말을 보냈다. 사고가 있어서 많이 놀랐다고 간단히 이야기했고, 가족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지냈다. 월요일 아침에는 눈을 뜨자마자 사고 생각이 가장 먼저 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마음속으로 세 번 되뇌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좀 더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 후 금요일에 교육으로 자리를 비우셨던 한 차장님은 사고 소식을 듣고 "아이고, 딱해라. 국화꽃이라도 갖다 놓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한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기보다 '왜 그랬을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는 것을.


월요일 아침이 되니 업무는 급물살을 타듯 바쁘게 흘러갔지만 가장 먼저 시간을 내어 사내 심리 상담을 신청했다. 사고 장면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선명하게 기억되는데 이럴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특히 17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비슷한 시기에 같은 반 친구가 투신하여 목숨을 잃었던 사고가 자꾸 떠올랐다. 그 당시 뉴스를 보는데 무언가 낌새가 이상해 담임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서 우리 반 반장이라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친구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옆에서 잘 챙겨주라고 말씀하셨다. 친구들도 당황스럽고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흐릿한 기억에 선생님께서 반에 소식을 전해주시고 같이 눈물을 흘렸던 것 같은데, 그 후에는 더 생각하지 말고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흘러갔던 것 같다. 그렇게 함께 깊이 추모하거나 집단 또는 개인 상담 등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그대로 덮어두었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 사고를 목격하면서 그 당시 덮어두었던 마음이 회오리바람을 맞아 흩날린 모래 아래로 다시 드러난 것 같았다. 


장례식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남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말이 생각났다. 깊이 추모하고, 눈물 흘리고, 위로받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날 준비를 하는 시간인 것이다.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던 나는 마음속으로나마 그때 그 친구와 그 직원 분께 국화꽃을 전달했다. 그리고 사내에서 사고 목격자를 대상으로 트라우마 상담 프로그램을 마련해 줘서 신청했고, 바쁘지만 시간을 내서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용기 내어 나의 마음을 살펴보고, 감정들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차차 갖기로 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나의 감정들과 마주하고자 한다. 상담을 신청하고 글을 쓸 용기를 낸 나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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