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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댁 May 21. 2023

한의사 선생님의 심리상담 같은 처방

몇 년간 소식이 없던 아토피가 몇 개월 전 다시 올라왔다. 양쪽 팔 접히는 부분에 났는데 간지럽고,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반팔을 입으려니 더욱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아토피는 2순위였다. 금요일 퇴근 후 한의원을 가게 된 건 조금이라도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사지샵에 가고 싶기도 했지만 급하게 예약을 잡을 수 없으니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도 받으며 편하게 누워있다 보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집 앞에 있는 한의원에 들렀다. 겉보기에는 허름해 보여서 평소에는 무심히 지나치던 곳이었는데, 지금 내가 가서 쉴 수 있는 곳으로 가장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의외였다. 안내 데스크 직원들과 한의사 모두 친절하고, 꼼꼼했다. 나의 상태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고, 기록하고, 심지어 상담을 길게 해 주었다. 나는 좀 쉬고 싶었을 뿐인데 말씀이 참 많으시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스스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라서 잠자코 들었다. 특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해 치료하고, 상담해 주시는 한의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겨울 피부가 유난히 건조하고, 거칠었다. 아토피가 생긴 시점도 그즈음인데 건조한 겨울 날씨는 매년 반복되었는데 이번에 아토피가 다시 생긴 건 스트레스와 피로도 한몫했다는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복직 후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회사의 합병 이후 사람은 없고 업무는 더 많아졌다. 수시로 떨어지는 업무 지시들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집에 돌아오면 아이와 저녁을 먹고, 목욕하고, 잠을 자기에도 시간은 짧았다.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더욱 피곤해져서 목욕을 하기 싫어하니 달래 가며 씻기는 일도 에너지 소비가 만만치 않다. 면역력이 약해지니 아토피가 다시 올라온 것은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을 짚어볼 때 남자 성향에 더 가까운 나는 사회에서 에너지를 많이 쏟는 편이다. 출산 후 육아를 하면서는 일과 육아의 균형이 중요하고, 업무에 대한 스스로의 기대치를 조금 낮춰는 게 필요하기도 한데 그와는 반대로 육아를 하면서 일도 과중하니 피로가 누적되는 건 당연했다. 게다가 깊이 잠들어있는 시간대에 아이가 깨서 엄마를 찾으면 그 후로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들도 많았다. 하루를 정리하고 잠들기보다 아이 재우다가 같이 잠들어서 아침에 챙겨야 할 것들이 자꾸 생각이 났다. 그 생각은 업무로까지 번져서 눈을 감고 누워있지만 머릿속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했다. 적어도 몸이라도 편하게 누워있자는 생각으로 시간을 끌다가 4, 5시경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하곤 했다.


한의사 선생님은 아이에게 수면의식을 하는 것처럼 자기 전에 의식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운동이나 취미 생활을 하면 일과 삶에 균형을 맞추는 데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하루를 망친 날이 있어도 스스로의 기준을 낮추고, 괜찮다고 여기는 마음 훈련도 꾸준히 이어나가라고 했다. 쉽게 되지 않고 시간이 걸리지만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조금씩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의원에 가서 심리상담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증상에 대해 필요한 처방만 하고 끝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퇴근 시간이 지나서도 열심히 일하시는 한의사 선생님이 참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한 가지 또 인상 깊었던 말은 임신과 출산을 겪은 10개월은 크게 아프고 지나간 것과 같다는 거였다. 게다가 출산 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육아라는 새로운 책임과 역할이 주어지고, 지속되다 보니 내 몸은 예전과는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상태를 제삼자가 객관적으로 바라봐주고, 이야기해 주는  시간이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의원에 가기 전에는 너무 지쳐서 '내가 이렇게 계속 지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이 정도면 오늘도 잘 보냈고, 내일도 그럭저럭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에너지를 잘 관리하는데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다. 그나저나 취미로 무엇을 하면 좋을까? 현실적으로 시간이 없는데, 노래를 들으며 산책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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