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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댁 May 24. 2023

나는 스스로를 돌본다.

2023년 5월 22일 점심시간, 혼자서 최근 사고가 있었던 장소를 지나가게 되면 어김없이 사고를 목격한 날이 떠오른다. 그 사건은 고등학생 시절 같은 반 친구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기억을 되새김질한다. 그 경험들을 떠올릴 때면 내 마음은 구름이 잔뜩 낀 하늘처럼 흐려진다. 경험은 정서와 연결되어서 그 경험을 떠올릴 때 나도 모르게 어두운 마음이 된다는 걸 깨닫는다.


트라우마 심리상담을 받으며 상담가 선생님과 공간에 대해 재경험을 해봤다. 그 공간을 지날 때, 특히 사고를 목격한 날처럼 혼자일 때, 사고를 다시 떠올리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공간은 우리 아이와 함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회사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 잠깐 화장실에 들러 양치를 한다. 동료나 어린이집 친구들을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입구까지 와다다다 뛰어간다. 지나가는 길에 아쿠아리움을 구경하고 싶은 날이면 잠시 멈춰서 물고기들을 바라본다. 하원할 때는 엄마를 만난 기쁨에 소리를 지르며 로비로 달려간다. "지윤아~ 엄마 손 잡아줘!"라고 말하면 일부로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의기양양하게 걸어가곤 한다. 아이가 "배가 고프고, 차가 막힐 수 있으니 식당에 갈까~?"하고 물으면 준비한 간식을 보여주며 "간식 먹으면서 집에 가고, 아빠랑 같이 저녁 먹자!"라고 말한다. 가끔은 회사 홍보관에 들어가서 한 바퀴 돌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한다. 처음에는 번쩍 안아서 에스컬레이터를 태웠는데, 이제는 "하나, 둘, 셋! 점프~~"하며 혼자서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다. 같은 공간 안에서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 표정, 감정만 떠올려봐도 입가에 미소가 가득해진다.


은연중에 '살면서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사건, 사고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17년 전과 최근 비슷한 사고를 겪었지만 무엇이 달라져 있는 걸까? 바로 나를 보호하고, 알아차리고,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가졌다는 점이다. 17년 전 뉴스를 통해 친구의 자살 소식을 접했을 때, 선생님을 통해 우리 반 반장이 맞다는 걸 확인했을 때, 나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친구들이 힘들어하지 않도록 잘 보살펴달라고 이야기했다. 책임감이 들었던 나는 그 사고에 대해 말하지 않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렇게 세월이 쌓이고 흐려진 기억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한 사고를 목격하자 그때의 기억과 마음이 겹쳐져 힘들었다. 이번에는 회사에서 트라우마 심리상담이 열려서 신청했고, 온라인으로 상담가 선생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앞으로 혹시나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마음을 챙길 수 있도록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 살면서 무엇을 경험할지는 내가 온전히 선택하지 못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안 좋은 경험들이 있고, 기억이 흐려졌다 싶다가도 불현듯 다시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좋은 경험들도 많다. 좋았던 기억들도 공평하게 떠올리고 재경험 하면서 어두운 마음을 펼쳐주고, 어루만져주고 싶다. 스스로를 돌보아준다는 생각과 마음이 나를 힘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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