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고나서...
한발 더 앞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너를 만나고..
친구가 결혼 후 출산을 했다.
세상에 태어난지 54일 된 아가를 만나러 가는 길...
친구가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되었을 때 만나러 가는 건 처음이었다.
친구도 출산 후 집에 온 친구는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아가는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서 오동통통 귀여운 볼살과 허벅지살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른 못지않게 연이어 트름을 하는 모습도, 입술을 오물오물 움직이는 모습도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가의 존재...^^
어느새 5kg 조금 넘는 아이를 하루종일 안아주고, 토닥여주느라 친구의 손목이 아프다고 했다.
아가는 자는가 싶다가 칭얼대며 엄마를 찾고, 그래서 밥을 먹다가도 쪽쪽이를 물려주고 다시 돌아와 후다닥 챙겨먹느라 밥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한다.
고군분투 하면서도 스스로 잘 해내고, 아이가 있으니 고생이지만 행복하다고 말하며 웃는 친구를 보면서 그저 대단하다고 느꼈다. 어쩐지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에서 먼저 어른이 된 모습이랄까?
사회생활을 비교적 일찍 시작한 나는 결혼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생각해왔다.
사실 나는 잘 기억이 안나는데, 참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기억한다. 너 24살 때도 결혼 얘기 했다고. (그래? 내가? 그랬단 말이지~? ^^;;)
돌이켜보면 27살에 결혼하면 참 예쁘겠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꿈꾸던 나이가 찾아왔다. 그리고 지나갔다.
겉으로는 '결혼할 인연이면 결혼하고, 아니면 말겠지...' 라며 당장 코 앞에 닥친 일이 아니니 무심한 듯 거리를 뒀는데 이제는 스스로 결심해야 결혼이란 것도 할 수 있겠거니 생각한다.
먼저 결혼한 친구의 조언도 귀 기울여 듣는다.
"결혼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마. 다 똑같아, 야~ 결혼 준비할 때 어떻게 살아갈지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설레고, 결혼해서 같이 살면 다시 연애 초반으로 돌아간 것 같아. 같이 사는 건 처음이니까. 그리고 신혼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아이를 갖게되고, 그리고 첫째가 좀 자라면 둘째도 갖게 되겠지?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거지 뭐..."
나보다 한발 더 앞서 어른의 삶을 살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 결혼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라고...
예전에는 '결혼할 시기에 옆에 있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말이 상대방을 깊이 사랑해서 결혼하는 게 아니라 나이에 맞춰서 '그냥' 한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싱겁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이제는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건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인걸까? 어찌되었든 '결혼할 때'라는 건 '서로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을 때'이고, 그 시기에 만났다는 건 결혼할 인연이 아닐까? 결국은 타이밍이구나 싶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읽다.
마침 이 시기에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라는 책을 아주 인상깊게 읽었다.
영어 제목으로는 'The Course of Love'인데, 내게는 결혼이 인생을 한단계 성숙하게 무르익게 해주는 수업과 같은 거라고 해석되었다. 그리고 인생에서 충분히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수업이라고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했다.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그들은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닌 진짜 러브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이 책은 결혼을 낭만주의의 관점이 아닌 현실주의로 좀더 면밀히 보여준다.
소설과 에세이 형식이 혼합되어 있는데, 결혼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 사유에 밑줄 긋는 부분도 참 많았다.
우리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경우 시작에만 얽매여 있지 않은지?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기대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특히나 수차례 고르고 골라도 나중에 보면 '엉뚱한 사람'을 곁에 두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결혼할 사람을 선택할 때에는 단순한 열정과 뜨거운 감정을 넘어서 어떤 종류의 고통을 인내할지 결정하는 일이라는 부분도 와닿았다.
토라짐, 갈등, 다툼, 배신 등을 겪으며 두 사람의 사랑이 성숙함에 이르게 되고,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완전해지는 삶의 모습에 결혼의 진정한 동력이 있다는 메시지였다.
277쪽부터 시작되는 '결혼할 준비가 되다'라는 파트에서 주인공 라비는 결혼한 지 16년이 되었지만 이제야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밝힌다. 결혼이라는 이수 과정을 선택한 사람이 '결혼 후 발견한 결혼에 대한 준비'가 이 책의 핵심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자신이 미쳤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커스틴이 까다로운 게 아님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사랑을 받기보다 베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위의 네 가지 사항은 앞으로 결혼을 결심할 때 결혼할 준비가 되었는지 체크포인트로 살펴보아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정의한 사랑, 결혼... 그리고 다짐
내가 정의한 사랑이란,
- 감추고 싶었던 약점이 상대방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질 때 느끼는 안도감
- 꿀밤 한대 즐겁게 주고 받을 수 있는 친밀감
- 어느해 겨울,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을 처음 들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 (언제 다가왔지?) 그리고 나도 모르게 따라오는 설렘 (우리 뭐할까?)
그리고 결혼이란,
-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가는 것은 학교에서 직장으로 넘어가는 것.
학교와 회사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구체적인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기억할 때 나타난다. 학교를 다닐 때는 새학기가 시작되고, 방학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기억할 때 구분지을 수 있는 시간의 기준이 있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이후 시간은 끊김없이 일렬로 흐르기 시작했다. (물론 출렁출렁 업 앤 다운을 반복하며...) 그래서 자발적으로 이벤트를 만들고, 시간의 흐름을 구분짓는 일이 필요하다.
무튼, 삶의 안정적이고 반복적인 리듬을 타는 결혼은 두 사람이 결혼을 준비할 때부터 시작되지만 결혼식을 마쳤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아니, 그때부터 시작이다.
내 부족한 모습에 때로는 셀프 꿀밤을 콩 박을 수도 있고, 때로는 상대방이 "으이구~"하며 콩하고 박아줄 때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부디 이내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가진 남자이기를... 그 분에게 미리 심심한 위로를 표하며... 그래도 함께 잘해보자고 손바닥 내미는 밝고, 슬기로운 여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