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에세이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을 읽고...
일요일 오후,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동네책방에서 따뜻한 밀크티 한 잔을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다.
여유롭게 흐르는 재즈음악과 커피 내리는 소리, 각자의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들, 책장을 넘길 때 나는 종이 냄새...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느긋한 주말 오후의 풍경이다.
한 템포 느리게 흘러가는 듯한 시간에 고마움을 느끼며 올해 들어 첫번째로 읽은 책,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 ‘빨간머리 앤이 하는 말’에 대한 감상평을 끄적여본다.
예전에 한번 읽었던 책인데, 2017년의 마지막 날 신문을 보다가 우연히 마주친 문구가 다시 이 책을 생각나게 했다.
내일은, 아직 아무것도 실패를 하지 않은 새날이라고 생각하면 기쁘지 않아요?"
매일 새로운 실수로 가득하지만, 굴하지 않고 낙천적인 앤의 이야기를 보며 씩씩하게 한 해를 품고 싶다는 바램으로 다시 펼친 책에는 마음 속 깊이 쏙쏙 박히는 보석같은 문장들이 참 많았다.
밑줄을 긋거나 책꼬리를 접어둔 부분에 다시 한번 마음을 뺏기는 것을 보면서 그간 크게 달라지지 않았구나, 느꼈다.
그러면서도 예전에는 지나쳤던 새로운 문장들에 눈길이 가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예전의 나에 또 다른 내가 더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이번에는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아 때로는 엉뚱해보이는 앤이 말하는 슬픔과 고통, 포기와 같은 삶의 어둠들이 어쩐지 더 마음에 와닿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고 밝은 마음으로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그녀의 모습이 더욱 빛난다는 것을 알기에...
힘든 상황 속에서도 늘 밝은 모습을 잃지 않는 오랜 친구의 모습이 앤과 많이 겹치기도 했다. 시험 준비로 몸도 마음도 지쳤을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으로 우리 다시 만날 때 꼭 선물해줘야지, 생각했다.
‘이 책 읽으면서 네 생각이 많이 났다고. 앤의 말처럼, 기억하라고. 너에게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방황의 길을 오래 걷게 되더라도.’
더불어 어렸을 때부터 고민이 있으면 책에서 길을 모색하는 것이 익숙한지라 어떤 책을 읽고, 어떤 문장에 밑줄을 긋는지가 지금의 나를 상당 부분 말해주리라 믿는다.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 준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런 관점에서 옮겨 적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참 많았던 이 책을 올해의 첫번째 책으로 선택하길 잘했다는 뿌듯함이 남는다. :)
p.92 어쩌면 고백은 ‘말’보다 ‘태도’가 더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다면 ‘사랑한다!’는 메시지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진심을 담아 상대에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 ‘미안하다’는 말 역시 마찬가지다. 태도는 곧 행동이다. 고백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다. 진심을 다해서!
p.117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날들이 아니라 진주알이 하나하나 한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아요.
p.163 행복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 중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것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우리가 의도적으로 해야 할 것은 ‘뭔가 하기 위해’ 달리는 게 아니라, ‘뭔가 하지 않기 위해’ 때때로 멈춰 서는 것이다.
p.170 꿈과 현실. 그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나는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이 두부를 자르듯 명확히 잘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살면서 어떤 종류의 고통을 참을 것인가. 그것을 결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
p.171 무엇을 원한다는 건 그것에 따른 고통도 함께 원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p.200 기운이 날 것 같지 않고, 나게 하고 싶지도 않다면, 슬픈 채로 있는 게 낫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이고, 울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슬픔의 무게는 덜어내는 게 아니다. 흘러 넘쳐야 비로소 줄기 시작한다. 그래야 친구들이 다가오고, 함께 슬퍼할 수 있다. 위로받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에야 슬픔은 끝난다.
p.206 정말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다가갔던 마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물러나야 하는 마음을 어떻게 다룰지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자신에게 해야 할 일이 아니라, 나에게 결코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제대로 아는 것 말이다.
p.218 누군가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준다는 건, 그 사람의 불안을 막아주겠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결핍을 누군가가 끝내 알아보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 결핍 안에서 공기가 되어 서로를 옥죄지 않고, 숨 쉬게 해야 한다. 그 사람이 옆에 없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안해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위성처럼 내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힘이 되고 따뜻해지는 사랑. 이것이야말로 떠날 필요가 없는 관계이다.
p.219 사랑이 타이밍이 아니다. 타이밍 자체가 사랑이다.
p.250 네가 정말 하기 싫은 일이 뭔지 아는 게 중요해. 왜냐하면, 그것만은 피해야 하니까! 그게 인생의 마지노선이 되는 거야. 그걸 알고 나면 최선이 아닌 차선도 견딜 만해지거든.
p.263 어둠이 없으면 빛이 없고,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깊다. 쓸쓸한 마음이 든다는 건 고독을 알게 되었단 뜻이다. 하지만 고독 맞은편에 서있는 사랑 또한 알게 될 것이란 점에서, 그건 정말이지 좋은 일이라는 것.
p.323 헤어짐을 감당해내는 순간, 우리는 진짜 사랑을 할 수 있다. 어차피 헤어질 테니까 대충 사랑하자가 아니라, 한 번뿐인 인생이니까 더 깊게 빠져들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나,
책과 함께,
연애하고픈 여자.
안지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