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90년생 안지영

스테디셀러 [82년생 김지영] 따라쓰기

by 이수댁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 어떤 식으로 플롯을 전개해 나갔는지 글은 어떤 스타일로 썼는지, 왜 이 책이 사회적 이슈(스테디 셀러)가 되었을지를 스스로 먼저 분석해 보세요. A4지 1~2장 내외면 됩니다.


82년도에 태어난 김지영씨가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가정과 사회에서 겪은 일들을 시기별로 나눠서 보여준다. 일상에서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경험들이지만 익숙해서 당연하게 지나쳤던 일들이다. 내가 경험한 일과 비슷한 에피소드도 있고, 누군가 겪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라 김지영씨는 주변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다. 주인공이라기에 이상할 정도로 평범하다. 마지막에는 이 모든 에피소드들이 산후우울증에 이어 육아우울증을 겪고 있는 김지영씨를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가 김지영씨와 남편 정대현씨에게 들은 이야기를 모은 것으로 설정하고 있다.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차례를 시기별로 나뉘어 있다.

2015년 가을 (김지영씨의 현 상태 서술)

1982~1994년 (출생~초등학생)

1995년~2000년 (중학생~고등학생)

2001년~2011년 (대학생~입사 후 사회생활)

2012년~2015년 (상견례~육아)

2016년 (김지영씨를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의 생각)


시대를 설명할 때는 책, 잡지, 기사, 통계자료를 인용한다. 성 감별과 여아 낙태, 출생 성비 불균형, 신입사원 채용 시 성차별,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 등에는 각주가 달려있다. 개인의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어떤 시대였는지를 함께 보여주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예를 들어 우리 집도 김지영씨 가족처럼 삼남매(딸-딸-아들)이다. 엄마께서 아들을 낳고 싶어서 노력하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던 해 출생 성비 불균형이 매우 심각했다는 사실은 책을 보면서 알았다. 김지영씨가 태어난 1982년은 여아 100명당 106.8명의 남아가 태어났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1990년에는 남아의 비율이 높아져 116.5명이 되었다고 한다. 자연적인 출생 성비가 103명에서 107명이라는 설명을 보니 출생 성비 불균형이 심하던 때에 태어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첫째가 딸이었으니 둘째가 아들이기를 기대하는 게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기대를 접고 내가 태어난 것이 실망스러우셨을까? 그렇지만 아버지는 언니가 서운할 정도로 나를 좋아해서 끌어안고, 뽀뽀하고, 엉덩이를 두들기셨다고 들었다. 자라면서 여자 아이여서 차별 대우를 받았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었다. 김지영씨가 나고 자란 82년도 보다는 시대가 조금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엄마도 끝까지 아들을 원하셨으니 완전히 바뀐 것도 아니었다.


이 책이 스테디셀러가 된 것은 동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한 번씩 겪었을 법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모여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책을 읽으면서 그냥 지나쳤던 일상의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다시 떠올려볼 수 있었다는 생각에 공감했다. 그 자리에는 남자 둘, 여자 둘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느낀 불편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눈 앞에 있던 두 남자 친구들도 포함되어 있는 경험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였다. 두 친구들은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리의 의식이 조금 더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어느 한 쪽이 잘못했다고 몰아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상황을 보여주고 같이 생각해보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한 성별에 치중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이야기는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김지영씨는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김지영씨를 담당하는 정신과 의사는 잘나가는 안과 전문의였던 아내가 육아를 위해 일을 그만두는 과정을 지켜본다. 또한, 고용하고 있는 여성 상담사도 어렵게 아이를 가졌지만 유산 위기를 넘기며 ‘일단’ 일을 그만두기로 한다. 그녀를 보며 아무리 훌륭한 직원이라도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병원 입장에서는 일을 그만두지 않고 고객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함께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기에 이 책은 더 오랜 시간 스테디셀러가 될 것이다. 부디 이 책을 보며 2016년의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지금은 세상이 달라져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어서 [OO년생 OOO]이란 제목으로 A4 2~3장 분량의 에세이를 작성해 봐 주세요. 자신의 생년과 이름을 넣으셔도 되고 혹은 소설 형식으로 다른 누군가의 년생과 이름을 넣으셔도 됩니다.


그냥 단순하게 쓰고 싶은 일기나, 에세이를 쓰라는 게 아니고 인물을 설정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는 뜻입니다. 작가님들이 구성하고 싶은 삶의 순간들이 담길텐데, 물건, 장소, 시간, 사건 등을 고려해 봐 주시기 바랍니다. 짧은 글이 더 어렵습니다. 왜 이 이야기를 담으려고 하는지, 독자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건지 '목적'을 먼저 세우시길 바랍니다.


사회의 변화 속에 있었던 나, 차별 받는 직장 문화 속에 있었던 그, 메시지를 담은 그(그녀)의 사건 등 주제의식을 담을 수 있을만한 내용을 꺼내서 구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90년생 안지영


안지영 씨는 1990년 9월 28일, 서울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키 50센티미터, 몸무게 2.8킬로그램으로 태어났다. 안지영 씨 출생 당시 아버지는 K기업의 영업사원이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위로 두 살 많은 언니가 있고, 5년 후 남동생이 태어났다.


남동생이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는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뱃속에 7개월 된 아기를 품고 있던 어머니는 하늘이 노래진다는 표현을 실감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대장암이라는 것을 확정 받고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회사에 나가던 아버지는 수술 후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전으로 이사 가기로 결심했다. 대전은 어머니가 나고 자란 고향이었다.


대전으로 내려와서 아버지는 건강회복에 집중했다. 한편으로 9살 첫째, 7살 둘째, 2살 막내를 두고 어떻게든 가정을 이끌고 나가야 했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서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작은 규모였지만 문구, 완구, 란제리 등 없는 게 없었기에 ‘미니 백화점’이라 간판을 달았다.


아버지는 처갓집에서 운영하는 회사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부모님의 맞벌이가 시작되었다. 언니는 학교에 지영씨는 어린이집에 갔고, 막내는 어머니 가게의 방에서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아버지가 퇴근하는 시간에 지영씨와 언니는 엄마가 미리 만들어 놓은 반찬을 냉장고에서 꺼내고, 국은 뜨겁게 데여서 식탁에 차려놓았다. 아버지가 퇴근하는 시간은 애니메이션이나 어린이 드라마가 끝나기 직전이었다.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가스불을 켜놓았지만 눈은 TV에 머물러 있었다. TV에 정신이 반쯤 팔린 채로 느릿느릿 밥상을 차리다가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했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쁜 상황이었지만 삼남매는 흐트러짐 없이 자랐다. 같은 배에서 나왔지만 성격은 제각각 이었다. 차분하고 속 깊은 첫째 하영은 꼭 필요한 것이 있을 때에만 부모님께 이야기했다. 그래서 하영이 문구점에서 실내화가 필요하다고 하면 부모님은 두 번 묻지 않고 사주셨다. 지영씨는 어렸을 때는 얌전했지만 커 가면서 점점 천방지축, 왈가닥한 성격이었다.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 비해 유독 독립심과 도전정신이 강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국어 고등학교에 지원했다. 어머니께서는 입시 경쟁이 너무 치열해 가면 고생이다, 라고 말했지만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뒤에서 조용히 도전을 지지해주던 아버지의 존재는 두사람만 아는 비밀이었다.


원하던 대로 외국어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영씨는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각 과마다 사람들의 특성을 구분 짓고 있었다. 영어과는 개인적이다, 불어과는 개성이 강하다 등등 과별로 성격이 정해져 있었다. 지영씨가 속한 중국어과는 드세다는 평을 받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반에서 1등을 도맡아 하고, 부모님의 많은 지지를 받으며 자란 친구들이 많아 자존심이 세고, 자기 주장도 강했다. 모두가 드센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선생님과 선배들에게 ‘너흰 드센 존재야.’라고 세뇌 받는 기분이었다. 그 드셈을 과시하며 체육대회 단체 응원전에서 발을 쿵쿵 구르며 흙먼지를 날렸다. 단연 목소리가 제일 컸고, 다른과 아이들은 중국어과 장난 아니라며 도리도리 고개를 내저었다. 내심 그런 분위기를 뿌듯해하며 즐기기도 했다.


대학교에서는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생활했다. 유학의 꿈은 일찍부터 접어야 했지만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모로코, 네덜란드 등 각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의 대학을 소개받고 한국인 1기로 입학했다. 한국 대학문화에서 벗어나 있어 강제로 술을 마셔야 할 이유도 없었다.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셨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 친구와 어울릴 때면 한국의 흔한 삼겹살과 소주 대신 다른 음식을 찾아 헤맸다. 돼지고기 분말스프가 들어간 라면도 먹지 않는 친구를 위해 생선구이 집이나 몇 없는 할랄 음식점을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휴학 한번 하지 않고 계절학기를 들으며 3년 반 만에 학점을 모두 이수하고 코스모스 졸업을 했다.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영씨가 정보를 알아볼 때는 이미 교환 학점을 모두 이수한 상황이었다. 경영학과에서 친구들과 사회적 기업 사례를 배우고, 직접 비즈니스 모델을 세워 연관 회사에 찾아가 제안하기도 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지만 일 경험이 없다는 것이 두려웠다. 취직해서 회사의 시스템과 일하는 방식을 먼저 배우고 싶었다. 무엇보다 끈끈한 선후배 사이를 기대하며 첫 회사에 입사했다.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신입사원 시절을 거쳐 어느덧 지영씨도 자기 업무를 도맡아 스스로 해결하는 시기가 되었다. 회사에서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분야라고 해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회사의 기부금, 임직원의 재능 등을 지역사회에 연결하는 업무를 맡았다. 임직원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등 현장에서 뛰는 업무가 많았다. 직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봉사활동이라고 해도 한 번 행사를 진행하려면 세세하게 준비한 것들과 필요한 짐들이 많았다. 혼자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무거운 짐들을 싣고 나르는 것도 온전히 지영씨 몫이었다. 어느 날 다른 부서에서 근무하지만 신입사원 시절부터 멘토 역할을 해주시던 남자선배와 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업무 특성상 힘을 쓸 일도 많으니 남자직원과 함께 일하면 좋을 것 같다고 언뜻 얘기했다. 선배는 남자직원의 역할이 무거운 짐을 드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그건 아니었다. 남녀의 신체 구조와 특성상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고정관념에 따라 남녀의 역할을 구분 지어 말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대학생봉사단을 운영하며 사업장이 소재한 지역아동센터에 멘토링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열정을 가득 담아 보낸 학생들의 지원서를 정리해보니 여학생 비율이 높았다. 면접을 앞두고 부서장님께 현황을 보고 드렸다. 가능하면 남녀 비율을 5:5로 맞추려고 하는데 지원자를 파악해보니 여학생이 훨씬 더 많다는 설명을 했다. 보통 면접을 보면 여학생들이 말을 더 잘하기 때문에 여자, 남자 따로 면접을 볼 거라고 했다. 성비 균형을 어느 정도 맞추는 게 장기적으로 활동할 때 수료율이 높다는 실무적인 의견을 전달했다. 부서장님께서는 남학생들이 그렇게 뒤쳐지냐며 남녀 차별적인 발언이 아니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반문하셨다. 면접을 보시고 나더니 학생들이 준비를 정말 많이 하는 것 같다며 열정에 감복하신 눈치였다. 함께 면접에 들어가신 남자 차장님께서는 성비가 꼭 맞지 않아도 활동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히셨다. 아이들과 끝까지 함께하면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친구들로 구성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지영씨도 애써 남녀 비율을 맞추지 않아도 활동에 지장이 없을 거란 생각에 동의했다. 합격자 명단을 보며 조를 편성하다 보니 여학생 보다 적은 남학생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경영기획회의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가 깜짝 놀랐다. 직책보임자 이상은 모두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여자 팀장을 찾기가 힘들지만 입사 후 여직원 비율은 계속해서 늘었다. 워킹맘 모임이 구성되고, 육아휴직 후 복귀해서 잘 적응하는 선배들을 보며 부디 여자 선배들의 뒷모습을 오래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퇴근하면서 집으로 출근한다고 한숨 지으면서도 힘차게 손을 흔드는 뒷모습을 응원한다. 몇 년 만에 가진 조직활성화 자리에서 정말 오랜만에 육아와 집안일에서 벗어나 저녁에 맥주 한잔 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그들의 유쾌한 웃음 소리가 하늘 높이 닿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힘차게 잔을 부딪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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