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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너라는 선물

다시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지 일년이 지났다.

by 이수댁

특별한 기념일


내게는 특별한 기념일이 있다.

첫번째는 1990년 9월 28일 - 귀빠진 날이다.

두번째는 2012년 6월 18일 -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디딘 날.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날이다.

세번째는 2017년 7월이다. 날짜는 정확하지 않지만 12년 만에 첼로를 다시 시작한 달이다.


다시 악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리워진 길 위에서


먼저 일과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트라우마로 남은 기억이 있다. 어느 날 감기인 줄 알고 내과에 갔는데, 신우신염인 것 같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열이 펄펄 나서 걸어다닐 때 몸이 붕붕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추석을 앞두고 버스를 타고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가 다시 한번 작은 병원에 들렀다. 의사는 신우신염이 맞는 것 같으니 큰 병원 응급실로 가보라고 했다. 그렇게 느닷없이 입원했다. 일주일 동안 열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명절이라 대부분의 의료진들도 병원에 없었다. 나를 진단하던 의사는 3~4일이 지나자 신우신염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왜 열이 나는지도 모른채 그날 밤을 보내야 했다.


‘난 열심히 일한 것 밖에 없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긴걸까...’


무서웠다.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어쩌지? 내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걸까?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더욱 두려웠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어려운 난관을 피할 수 없으며 때로는 도저히 풀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매듭을 만나기도 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주던 가족들이 돌아가고, 사람이 없는 어두운 복도를 걷다가 가톨릭 병원 복도에는 걸린 성화를 보았다. 굳은 신뢰를 갖고 평온한 마음으로 꼬여있는 매듭을 푸시는 마리아 성화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렇게 살아가는게 맞는걸까?'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다행히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열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고, 큰 문제 없이 퇴원했다. 그 때의 나는 함께 일하던 선배가 갑자기 이직을 하게 되어 모든 업무를 혼자 맡았다. 열정도, 경험도 많은 선배와 함께 일했었기에 전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사내에서 사회공헌 업무에 뜻을 두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잘하고 있는걸까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마음 한 구석이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내색은 못해도 업무의 짐을 어깨 가득 짊어지고 있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던 것이다. 괜찮다고 웃으면서 말해도, 내 몸은 이미 혼자서 힘들어한지 오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명절이 지나고 회사에 복귀했을 때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배와 이야기를 나눴다. 선배는 내게 취미를 가지라고 조언했다. 상황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여겨서는 안된다고. 취미를 가지면 내가 잠시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고, 일이 잘 되지 않더라도 집중할 수 있는 다른 세계가 있으니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즐거운 일을 찾아서 하면 모든 것이 다 잘 풀릴거라는 믿음을 주셨다.


그 때의 기억을 되돌아볼 때 선배의 말은 옳았다. 지금 나는 일 말고도 집중할 수 있는 취미를 갖고 있다. 점심시간이나 업무를 마치고 틈틈이 첼로 연습을 하면서 숨을 크게 내쉬어본다. 몸에 힘을 빼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나만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첼로 연습을 할 생각을 하면서 더욱 집중해서 업무를 시간 내에 마치려고 노력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첼로를 연습한다. 다음날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고, 활력을 되찾았다. 같은 상황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되었다.


저는 아마추어입니다


좋아하는 작가로 꼽는 정여울 작가님도 첼로를 연주하신다. 올해 1월부터 월간 정여울에 첼로 연주가 나를 바꾸는 소박한 도전이라는 글도 쓰셨다. 평소 느끼던 바와 맞닿아있기도 하고, 내 마음을 대신해서 글로 너무 잘 표현해주신 것 같다.


내 전공도 재능도 아닌 것, 하지만 ‘진심으로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순수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 나에게는 최고의 도전이었다. 전문적이진 않지만 “저는 아마추어입니다.”라는 사실을 고백하고 시작하는 연주는 내게 또 다른 희열을 안겨주었다.

...

청중에게 실수하는 모습을 ‘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연주하니 ‘나는 실수투성이다’라는 자기 인식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음악을 연주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음악과 함께함으로써 더없이 행복하다’라는 생각 속에서 전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듯 도전이란 꼭 에베레스트에 오르거나 업계 1위 달성이라는 어마어마한 플랜이 아니라, 내 삶을 바꿀 힘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나아가는 일상의 용기로 더욱 빛을 발한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모험’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의 꿈을 깨닫는 것, 자기 안의 깊은 열망과 마주하는 것, 환경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닐까. 누구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지 않는 것, 다만 나 자신의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에 따르는 소박한 도전이야말로 나를 바꾸는 힘이다.

- [월간 정여울 1월] 모험, 나를 바꾸는 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중에서 -


부족한 실력으로나마 진심을 다해 연주했을 때 느껴지는 행복이 있다. ‘나 이만큼 잘해요!’라고 뽐낼 수 있는 실력이 아닌지라, ‘부족하더라도 예쁘게 봐주세요~’라고 고백하고 연주한다.


회사 재능봉사단 활동의 일환으로 요양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연주할 때 귀염둥이 손녀딸을 대하듯이 박수치며 ‘에델바이스’와 ‘백세인생’을 따라 불러주신 순간의 감동을 기억한다.



지역아동센터에 방문했을 때는 눈 앞에서 연주하는 악기가 신기하듯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아이들이 지켜봐주었다. 핑크퐁 ost ‘상어가족’을 떼창으로 부르다가, 흥이 났는지 춤을 추겠다고 해서 장기자랑 시간을 갖던 즐거운 시간을 기억한다. 마지막에 다같이 사진을 찍을 때 꼭 안아주던 작은 아이의 모습도 함께.



한 대형병원의 환자의 날 행사에서 마술공연 중간에 쉬어가는 시간으로 준비한 작은 공연도 있었다. 간호사 친구에게 그 날의 경험을 이야기 했더니, 병원의 기계음에 익숙한 환자들에게 악기 소리가 분명 새로운 자극이 되었을 거라고 했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진행된 마술 공연 사이에 갑자기 분위기를 너무 차분하게 만든 건 아닐까 고민했었는데. 악기 연주에 앞서 마임이라도 하면 환자들이 좀더 즐겁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는데. 아름다운 소리를 전달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더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본다.

예전과 비교했을 때 상황이 더 나아졌나?


그렇다.

옆에서 마음으로 함께 지원해주는 동료가 생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업무도 예전보다 손에 익었다.

이제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할 줄 안다.

업무 외에도 집중하고, 즐길 수 있는 첼로가 옆에 있다.

하고 싶은 일이었으니 잘해야한다는 생각에 불안해하기 보다 즐길 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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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한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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