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석 작가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를 읽고
[지금은 없는 이야기]를 쓴 최규석 작가의 대표작은 [울기엔 좀 애매한], [송곳],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100℃]등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웹툰이 윤태호 작가의 [미생] 뿐이지만, 최규석 작가님의 작품 제목은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다. 책띠지에 나와있는 작가 사진을 보니 미남이시다. 날렵하고, 조금은 날카로운 인상이다. 착하게 돌려서 말하거나, 둥글게 표현하지 않고 송곳처럼 날카롭게 허를 찌르는 글쓰기를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없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많은 책들이 고난을 웃음과 긍정으로 이겨나가라고 외치고있다. 자기계발서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걸쳐 내려온 우화도 마찬가지다. 많은 독자들이 그런 책을 읽으며 ‘그래, 내가 마음을 고쳐 먹어야지’하고 반성한다. 평소의 나도 긍정과 감사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고통과 실패가 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스스로를 반성하고, 태도를 고쳐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고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하는 책은 많지 않다. 있다 해도 대부분 두껍고, 복잡하다. 그래서 최규석 작가가 나섰다. 단순한 구조로 적적할 비유를 사용하는 짧은 이야기를 썼다. 우리를 짜증나고 분노하게 하는 상황들에 맞설 때, 자신의 이야기가 적절하게 쓰이기를 바라며.
짧아서 읽기 좋았다. 그림이 있어서 더 쉽게 다가왔다. 출퇴근길 지하철을 타는 시간은 16분. 그 사이에 몇 편씩 읽을 수 있었다. 짧은 이야기 속에 생각할 거리가 있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빠르게 읽는 것에만 치중하지 않고, 중간중간 멈춰서 생각해 보았다. ‘어라, 이건 뭐지?’ 뒤통수를 치는 듯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책띠지에 이렇게 써있다.
‘만화가 최규석, 잔혹한 우화로 삶을 벼리다. 오르지못할 나무를 찍는 열 번의 도끼질 같은 이야기’
벼리다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벼리다. (동사)
1. 무디어진 연장의 날을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날카롭게 만들다. 예: 대장간에서 낫과 호미를 벼리다. 2. 마음이나 의지를 가다듬고 단련하여 강하게 하다. 예 : 투지를 벼리다.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우화를 창작하는 작가의 시선이 새로웠다. 씁쓸하고, 절망적인 결말도 많았다. 작가가 작정하고 잔혹한 현실을 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우화에 등장하는 상황 속에 있지만 진짜 모르거나, 또는 못 본 척 우매하게 지나가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투덜투덜 불평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상황이면 개선하고, 아니면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와 기존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식까지 없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이 책을 보면서 다시금 깨달았다.
p77. 결국 작업반장은 매달 천 냥하고도 스무 냥 정도를 더 받게 되었다. 다른 일꾼들은 뭔가 알 수 없는 허탈함을 느꼈지만, 다들 그만 잊기로 했다.
p91. 혼자가 된 빨강이는 일이 두 배나 많아지긴 했지만 즐겁게 일했습니다. 농장 전체를 책임지는 솜씨 좋은 일꾼이라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있었으니까요. 물론 주인은 훨씬 더 즐거웠습니다.
p101. 오래전에 멸종된 어떤 동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동물들은 귀도 없고 목소리도 없고 눈도 없고 털가죽도 없는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멸종된 어떤 동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P116. 흰 쥐들은 모두 그의 희생을 기렸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그의 뒤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너도나도 흰 고양이의 먹이가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어떤 흰 쥐들은 더 좋은 먹이가 되기 위해 억지로 제 살을 찌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흰 쥐들은 옆집에 산다는 검은 쥐들은 본 적도 없었답니다. 그들이 정말 검은색인지조차도…….
P121. “도와주다니? 살기 위해 모두가 힘을 합쳐 늑대와 싸웠던 것이 어째서 도와준 거야?” “그렇지않아. 늑대들은 너희들 흰 염소를 사냥하는 거고 우리가 너희들을 도와서 함께 싸운 거였지.” “무슨 소리야? 검은 염소들도 많이 잡아먹혔었잖아.” “그때는 늑대들이 실수를 한 거지. 언제나 사고는 일어나는 거니까. 어쨌든 언제까지고 우리가 너희들을 도와줄 순 없어. 이제 너희 일은 너희가 알아서 해봐. 우리가 자꾸만 도와주니까 너희가 자립을 못하잖아.”
P123. “이제 검은 염소들은 한 마리가 잡아먹히면 그놈이 왜 잡아 먹혔는지 알아내느라 대항할 생각을 못할 거야. 뿔이 굽어서 먹혔는지, 다리가 짧아서 먹혔는지, 암놈이라서, 아니면 수놈이라서 먹혔는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겠지. 스스로 먹힐 만한 이유가 있어서 잡아먹히는 거라고 여기는 놈들을 사냥하는 건 식은 죽 먹기지.”
P128. 연민을 느낀 조물주는 돼지들에게 두 가지 선물을 주었다. 망각과 웃음. 선물을 받은 돼지들은 여전히 고통받았지만 개처럼 웃을 수 있었다. 웃으면서 잊었고 잊으면서 웃었다. 그래서 개처럼 행복했다.
P155. 개구리들은 모두 그를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기들도 고통을 선물로 느낄 수 잇기를 바랐다. 하지만 예민한 개구리는 고통을 참을 수도 그것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는 냄비를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바보들아. 뜨거운 건 그냥 뜨거운 거야.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뜻일 뿐이라고!”
개구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예민한 개구리처럼 불평불만만 늘어놓다가 이 순간의 소중함을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P181. 늘상 지쳐있고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누구 하나 전보다 행복하지 않은, 그저 그렇게 닭 비슷한 까마귀들이 닭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공작 한 마리가 찬란한 꼬리를 거만하게 접었다 폈다 하며 까마귀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1. 최규석 작가의 [송곳] 읽어보기
2. 최규석 작가의 [울기엔 좀 애매한] 읽어보기
3. 최규석 작가의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읽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