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 작가와 함께하는 동유럽 글쓰기 여행
동유럽 국가들을 여행하다 보니 우리나라와 다르다 못해 놀라운 차이점이 있다. 명동과 같은 번화가 케른트너도 밤 9시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다. 빈에 도착한 첫날 밤, 한국에서는 의례 쓰곤 하는 ‘불타는 금요일 밤’이란 말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빈에 왔으니 맥주는 병맥주로 마셔. 여긴 캔맥주가 발달해있지 않아서 병맥주로 사는게 나아. 그리고 오스트리아 와인도 마셔봐. 맛있어~”
저녁 식사를 하면서 여행을 많이 다니신 이승원 사진작가님께서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병맥주와 와인을 마셔볼 것을 추천해주셨다. 빈의 날씨는 생각보다 더웠고, 시원하게 술 한 잔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일행들은 긴 여정 끝에 호텔로 돌아가 쉬고 싶어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가기 전 슈퍼마켓에 들러 술을 사자고 했다.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으니 슈퍼마켓에서 병맥주든 와인이든 구해 소소하게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빈에 도착하기 전부터 와인 스토어를 찾던 나는 곳곳에 적힌 빈(Wien)과 와인(Wine)을 헷갈릴 정도로 애타게 슈퍼마켓을 찾았다. 하지만 구글맵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통해 우리가 찾던 슈퍼마켓이 20시에 이미 문을 닫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택시를 잡으려고 멈춰선 지점에 패스트푸드점처럼 운영하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었고, 왠지 맥주를 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 찾았다!!
시원한 병맥주를 손에 쥔 후에야 할 일을 모두 마친 듯한 가뿐한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는 다뉴브강을 따라 신나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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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보니 침대 옆에 놓인 맥주는 삼분의 일도 채 줄지 않았다. 피곤해서 한입 맛만 보고 잠들어버린 것이다. 맥주 몇 모금 마시고 기절하듯 잠들었다니... 김이 샌 맥주처럼 맥이 빠졌다. 다 마시고 잤어야 하는 건데...아깝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준비를 마치고 조식을 먹으러 갔다. 자몽, 파인애플, 복숭아 등 다양한 과일을 신나게 담았다. 치즈와 햄 종류도 많은데 무슨 맛일지 궁금해서 여러가지 맛을 조금씩 접시 가득 담았다. 어쩜 이른 아침부터 식욕이 이리도 좋을까?
여러가지 맛을 탐험하고 싶은 호기심이 넘쳐났다. 크로아상을 포함해 다양한 빵이 가득한데 이번에는 안 먹어 본 빵을 먹기로 한다. 좋아하는 요거트와 견과류도 기다리고 있었다. 더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만큼 접시에 음식을 가득 채운 후 자리로 이동하려는 찰나에 와인잔이 눈에 띄었다. ‘와... 와인이다!’
‘아침부터 와인을 마셔도 괜찮을까, 얼굴 빨개질텐데...’라는 고민도 잠시, 내 손은 이미 잔에 와인을 졸졸졸 따르고 있었다. 과일을 먹으며 홀짝, 빵과 치즈를 음미하며 홀짝홀짝 맛보는 스파클링 와인이 너무도 달콤했다.
한 잔만 마시면 아쉬울 것 같아 한 잔 더 가져왔다. 술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편이라 부끄러웠지만 정 작가님께서는 오히려 화색이 좋아 보인다고 말씀해주셨다.
“와인 한잔에 얼굴에 꽃 피듯이 화색이 도네. 그리고 더 잘 웃네.”
그도 그럴 것이 술을 마시면 잘 웃는다. 나사가 하나 풀린 것처럼, 허파에 바람이 든 것처럼 작은 일에도 웃게 된다. 술 한잔에도 살짝 취하니 가성비 좋은 몸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하하하 웃다보니 기분이 좋아져 에너지 넘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평소라면 상상도 못할 모닝 와인, 어쩐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음식이 될 것 같다.
소울푸드란 무엇인가? 욕조에 몸을 담그면 온 몸에 가득 채워지는 온기처럼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음식이다. 똑같은 일상의 굴레 속에 여행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 혹은 일상 속에서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 빈에서 맛본 모닝와인을 떠올려봐야겠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의 소울푸드 목록에 추가할 음식이 하나 더 생겼다. 싱그럽고, 새롭게 하루를 시작할 모닝와인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