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더 중요해!
오랜 친구를 만났다.
아홉살 때 복도를 지나다니면서 "안녕~" 인사하던 '안녕 친구'에서, '단짝 친구'가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20년을 함께한 친구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호호호 이야기 나누고 싶은 ‘평생 친구’이기도 하다.
여행 기간에 상관없이 해외에 다녀오면 소소한 기념품을 늘 선물했다. 고시 공부에 매진하는 친구에게 다른 세상의 맛, 풍경, 분위기 등을 조금이나마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친구는 눈에 띄게 헬쓱해져 있었다. 더운 바람이 선선해지고, 시험이 90일도 채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고 긴장이 많이 되었나보다. 두달 가까이 장염을 앓았다고 한다. 이번엔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 기대하면서 7월 중 이틀도 채 쉬지 않고 공부했단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장염 증세가 심해지더니 밥도 잘 못 먹고, 체중도 감소하고, 심지어 찻잔을 드는 손이 떨릴 정도로 기력이 빠져있었다.
친구는 시험 결과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지금 이 시간을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고시생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아파도 마음 편하게 쉬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약해지고, 공부할 때 집중력도 떨어져서 불안한 마음이 큰 것 같았다.
몸과 마음 모두 편히 쉬어야 나을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할까? 우리는 하루만이라도 영화를 보며 리프레쉬 하기, 일주일에 한번 시간내서 운동하기, 건강 도시락으로 식습관 바꾸기 등 여러 생각을 모아보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쉼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시험에 대한 부담도 크지만, 이십대 후반에 아버지께 지원을 받아 공부하다보니 쉬는 모습을 보이는 것조차 죄송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예전에 경주와 포항으로 함께 다녀온 여행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때 코스가 참 좋았지!", "시험이 끝나면 네팔 히말라야 가보는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야. 너무 멀면 제주도 한라산이라도 가자~"라며 꿈꾸는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순간 마음의 짐을 살짝 내려놓은 듯 얼굴 표정이 밝아지는게 보였다. 여행이라는게 생각만으로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
친구는 문득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중요한 건 11월에 시험을 보기까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는거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 쉬지 못하는 부담감에 빠져있을 때 결코 보이지 않던 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드러나는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이 수험생이다 보니 쉬라는 말을 제대로 못해주는데, "아플 땐 편히 쉬어~"라는 한마디가 도움이 되었나보다. 신나는 여행 계획도 그녀의 숨통을 좀 틔어준 것 같았다.
나 또한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직 여독이 남아있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일정을 소화하며 장거리를 이동했으니 그럴만도하다. 여행이 환상적일수록 여독은 긴법이니...^^
휴가를 마치고 돌아왔으니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지배했다. 하지만 막상 몸과 머리는 그만큼 따라주지 않아 멍해지곤 했다. 일에 집중이 잘 안될 때 무조건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 중요한지 생각해보았다. 집중되지 않는 시간조차 업무에 매달리기 보다 잠시 내려놓고 왔다갔다 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래,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한 것 같아~
앞으로의 공부 방향을 찾은 것 같다며 박수치며 기뻐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친구를 떠올리며 나도 앉은 자세를 고쳐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