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고민해도 모자람이 없는 시간
내가 책을 낸다면...
무슨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중학생 때 전교회장 선거에 나갔다. 연설문을 써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뭐야, 공약도 없이 전교회장 하고 싶다고 한거야?”
어떻게 연설문을 써야 할지 한참을 멍하게 고민하고 있으니 친구 어머니께서 한 말씀 하셨다. 친구는 나를 지지한다는 연설을 해야 하는데... 막연히 전교회장 선거에 나간다는 생각을 했지, 무엇을 어떻게 하는 회장이 되겠다는 생각이 뚜렷하지 않았구나... 나에게 부끄럽고, 친구에게 미안했다.
요즘의 나를 보면 중학생 시절의 모습이 떠오른다. 책을 쓰고 싶다면서 무엇을 쓸지 모르겠다니... 이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른 채 막연히 책쓰고 싶다는 생각만 한 것 같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니 자꾸만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다 진짜 책을 쓰고 싶은 건지 스스로를 의심해본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과 책을 내는 건 다른게 아닐까? 어쩌면 ‘한 권의 책’이라는 결과물을 내놓기에 자신이 없는 건 아닐지?
책쓰기 글쓰기 코칭 프로그램 ‘꿈꾸는 만년필’에서는 2주 전부터 출간 기획서 쓰기 미션이 주어졌다. 세 번에 나눠 진행하니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씩 채워보라고 시간을 주셨다. 하지만 난 2주가 지나도록 넋을 놓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음주에 하면 되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코치님께 제가 원하는 건 책쓰기가 아니었다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기를 여러 번... 하지만 지금 출간 기획서를 쓰지 않는다는 건 배움의 기회조차 놓치는 것이었다. 나중에 다시 책을 쓰고 싶을 때 이런 상황이 반복될텐데... 잘 모르겠지만, 일단 출간 기획서를 써 보기로 결심했다.
서점을 산책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책들을 살펴보았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책은 무엇이고, 손길이 가 닿는 책은 무엇인지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세 권의 책을 골랐다. 책표지를 보고 호기심이 발동하고,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았지만 한 가지 분야의 책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바로, 여행 산문집.
‘언젠가, 아마도’의 김연수 작가와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작가는 이미 유명하고, 또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들이다.
#언젠가, 아마도 #김연수
‘김연수’라는 이름을 보기 전에 책표지가 예뻐서 먼저 손이 갔다. 비행기 안에 앉아 있는 남자. 그 뒤에 비행기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차창, 그리고 노란색 바탕. 아~ 예쁘다!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김연수 작가님 여행 산문집에는 여행 사진이 없다. 정말 한 장도 없다. 여행 관련 에세이에 사진이 없다니... 내 기준에서는 상식 밖이고, 대단한 배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김연수 작가 책을 좋아하는 건 여행지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작가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지난 1월 하노이를 여행할 때 일행이 김연수 작가님은 같은 공간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읽어보라고 칼럼 링크를 공유했다. 그 칼럼이 이 책 안에 담겨 있어서 다시 한번 그 때를 떠올리며 읽어보았다.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빙글빙글 도는 하노이의 오토바이처럼 하노이에서의 풍경과 바람, 그 당시 느낀 감정들이 회오리 치듯이 떠올랐다.
하아~ 작가님 책 참 좋다!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임경선
‘교토’의 매력에 흠뻑 빠진 작가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이야기 하는 듯한 책. 어렸을 적 일본에 살았던 작가가 도쿄 여행 에세이에 이어 교토의 숨겨진 매력을 보여주는 책이다. 겉멋을 부리지 않고, 전통을 지키며 미래를 지향하는 특유의 매력을 지닌 교토 거리에서 마주한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풀어나간다.
그 중에서 동네서점에 대한 이야기, 기념품으로 산 에코백 이야기를 읽었다. 읽다보니 절로 미소 짓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내 글도 이렇게 사람들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글이 될 수 있기를. 여행 에세이라고 해서 장소에 대한 정보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떠오른 생각들이 흩어져 버리지 않게 글로 담으면 참 좋은 것 같다. 작가님의 책 [임경선의 도쿄]와 [교토에 다녀왔습니다] 모두 읽어봐야겠다.
#낭만이여행의일이라면 #윤정욱 #브런치북금상수상작
‘브런치북 금상 수상작이라니! 이렇게 멋진 책으로 나오다니! 역시나 여행에 컨셉이 제대로 있었군~ 남다르다!’ 연신 감탄을 내뱉게 한 책. 또 나의 부러움을 크게 산 책.
영화에서 본 장소에 직접 찾아가 같은 배경 속 영화 장면이 담긴 스마트폰을 DSLR 카메라로 찍으며 여행한 집돌이의 이야기. 글, 사진, 영화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맞게 조합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 사례였다.
집에 가는 길에 출간 기획서 작성하는 걸 왜 두려워 했는지 돌아보았다. ‘과연 내 책을 누가 사줄까? 누가 읽어줄까?’하는 의구심이 컸던 것 같다.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들 중에 사람들이 궁금해 할 만한 내용은 무엇일까? 이왕 책을 쓰는거면 종이를 낭비하고 싶지 않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만 남기는 것보다 발품을 팔고, 자료를 수집해서 책쓰기 과정 자체에서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쓰고 싶은 분야는? 주제는? 독자는 누구? 이미 시중이 나온 책 중에 비슷한 책은? 그 책에서 배우고 싶은 점과 개선하고 싶은 점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는 건 이제 그만. 처음이니까, 미숙할 때니까 갖고 있는 메리트를 놓쳐선 안된다. 책 쓰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지금 출간 기획서를 써보는게 득일까? 실일까?
득이다. 잃을 게 없다. 당장 책을 내지 못하더라도 출간 기획서 쓰는 경험을 쌓는거다. 시간이 흐른 뒤에 완벽하게 하고 싶다고? 절대! 완벽한 시간은 없다. 빨리 시도해보고 고쳐나가는게 더 좋을 것 같다.
책쓰기 초보로서 갖는 풋풋함과 어리숙함, 그 사이에 가득 담은 진심과 정성은 나중에 하고 싶어도 흉내낼 수 없다. 비록 내가 쓴 글을 다시 보며 이불퀵을 날리는 순간도 찾아오겠지만, 그래서 뭐... 고이 책장을 덮으면 그만인 것을! 오히려 처음이니까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무턱대고 출마한 전교회장 선거는 공약 만들기를 시작으로 연설문 작성, 선거 포스터 제작, 유세, 연설 등을 거쳐 투표까지 마무리 되었다. 운좋게 전교회장으로 당선되어 각 학년, 반 임원들과 함께 더 좋은 우리 학교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책쓰기에 대한 생각도 그 자체가 씨앗이다. 거름을 뿌리고, 물을 주며 자랄 수 있게 도와야한다. 스스로 도와야한다. 그러다보면 단계를 거쳐 어느 순간 꽃이 활짝 펴 있지 않을까? 오래 걸려도 괜찮다. 일단 눈 앞에 놓인 출간 기획서부터 차근차근 작성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