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엔 이 맛이지!

삼청동 겨울 별미를 찾아서~

by 이수댁

삼청동!
삼청동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동네 중 하나다.


6~7년 전, 처음 삼청동에 갔을 때 '남자 친구와 손 잡고 오면 좋은 동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나 정독도서관의 벚꽃과 단풍은 너무나 멋지다고, 이 동네에서 아이스크림이 얹어진 커다란 벨기에 와플도 맛있다고 했다. 20대 초반에 벨기에 와플을 맛보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고, 그렇게 삼청동은 달콤하고 설레는 동네로 기억되었다. '언젠가 애인을 데리고 오겠다.'며 혼자서, 또는 친구들과 삼청동 구석구석을 탐방하곤 했다.

처음 삼청동에 갔을 때 아기자기하고 특성 있는 상점과 음식점이 많았는데, 점점 프랜차이즈 상점들로 채워지는 모습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여전히 사계절 언제 찾아도 무언가 즐거운 일이 일어나는 동네이기도 하다.


한 번은 거리에 앉아 해외여행을 다니며 찍은 사진을 파는 청년을 만나고, 또 언젠가는 거대한 비눗방울을 만들어 날리는 아저씨의 묘기를 보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걷다가 우연히 농부시장 마르쉐를 발견하기도 했고, 작년에는 '삼청동 외할머니'라는 TV 프로그램에 손님으로 촬영을 하기도 했다.


삼청동 외할머니 8화에 손님으로 등장했어요.


최근 회사 선배로부터 삼청동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의 단팥죽이 정말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팥죽. 자칫 고루해 보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특별하게 느껴졌다. 한번 들은 긴 이름이 잊히지 않았다.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이라니, 그럼 첫째는 어디야?' 이름이 '첫째로 잘하는 집'이라면 주인장의 주장이라며 식상하게 느껴졌을 텐데, 둘째로 잘하는 집이라니... 궁금함이 일었다.

주말에 친구들과 단팥죽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안국역 2번 출구에서 만나 마을버스 종로 2번을 탔는데, 감사원 정류장을 모르고 지나쳐 한 정거장 지나서 내렸다. 와룡공원에서 감사원까지 거리는 700m. 이 추운 날씨에 1,000m는 걸어야 단팥죽집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운동장 3바퀴 반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걷다 보니 '단팥죽'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드르륵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가니 난로가 따뜻하게 켜져 있었고, 구석 자리가 하나 남아있었다. 두 사람이 앉으면 꽉 들어차는 작은 의자는 1970년대 우리의 체형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의자와 탁자를 포함한 소박하고 투박한 실내 모습은 옛 시절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40년 넘게 추억을 지켜온 주인장의 고집이 이 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선물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이 곳이 단팥죽 전문점인 줄 알았다. 단팥죽 말고도 다른 메뉴가 있다면 팥칼국수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십전대보탕, 식혜, 수정과 등이 있는 한방찻집이었다. 단팥죽은 식사가 아닌 디저트로 먹는 작은 크기였다.


추운 날씨에 발걸음을 보채며 찾아온 우리는 그럼 팥죽을 애피타이저로 먹자며 망설임 없이 3그릇을 주문했다. 그리고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잡고 언 손을 녹이고 있었다. 단팥죽을 미리 만들어놓고 바로 주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오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알고 보니 만들어서 떠 주는 게 아니라 손님이 주문하면 즉시 만들어 정성스럽게 팥죽을 내주시는 것이었다. 진짜 그런지 아닌지는 뚜껑을 열고 한 숟갈 맛을 보면 느낄 수 있다.


두근두근! 단팥죽 뚜껑 열기 전
밤, 은행, 설탕에 조려낸 콩, 계핏가루가 한가득!
큼지막한 찹쌀떡 (오예~)


단팥죽에는 밤, 은행, 콩, 계핏가루가 올려져 있었다.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숟가락으로 살살 뒤적이다 보니 이럴 수가! 찹쌀떡이 숨어있었다. 어찌나 큼직한지 딱 내 스타일이었다. '오, 맛있다. 달달하네!'를 연속해서 외치며 쫄깃쫄깃한 찹쌀떡을 조금씩 떼어 한입 두입 먹다 보니 어느새 바닥을 긁고 있었다. 방금 먹었는데 또 먹고 싶고, 뒤돌아서면 생각나는 그런 맛이었다. 어느새 체온도 따뜻하게 올라가 있었다.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 정보


하지만 식사라고 하기엔 양이 살짝 아쉬웠다. 1차를 마쳤으니 2차로 '삼청동 수제비'를 먹으러 갔다. 항아리에 담긴 수제비를 각자의 앞접시에 떠먹는 집인데,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애피타이저로 속을 조금 채우고 온 우리는 줄이 얼마나 길든 상관하지 않고 대열에 합류했다. 생각보다 회전율이 빨라 금세 우리 차례가 되었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삼청동 수제비
수제비 2인분, 감자전 하나, 동돌주 반되를 주문했어요.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메뉴를 보며 무엇을 주문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수제비를 먹으려고 했는데 옹심이의 쫄깃함도 탐나고, 파전도 먹고 싶었다. 앞줄에서 우리의 대화를 들은 아주머니께서 이 집은 수제비가 제일 맛있고, 파전보다는 감자전이 맛있다고 추천해주셨다. 매주 주말만 되면 남편과 함께 이 곳을 찾으신다니 믿음이 갈 수밖에 없었다. "수제비 2인분, 감자전 하나, 그리고 동동주 반되요!"

수저를 놓기도 전에 수제비가 나왔다. 감자전도 바로 뒤따라 나왔다. 동동주까지 합류했다. 먹을 준비 완료!


수제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얇고 넓은 모양의 수제비와 동동주
감자전은 간장을 살짝 찍어서 먹어요


수제비는 얇고 넓적해 처음에는 터진 만두피가 들어간 줄 알았다. 국물 맛이 깊었다. 음~ 맛있다, 맛있어. 감자전도 바삭하게 익어 동동주와 곁들이기에 더없이 좋았다. 와룡공원에서부터 1,000m 걸었다고 등산 마치고 온 사람들처럼 입맛이 돋았다.


두시가 지나도 사람들의 행렬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1982년부터 수제비 하나로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명성이 어마어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줄에 선 아주머니께서 식사를 하고 나가시면서 우리가 음식을 싹 다 비운 모습을 보고 뿌듯해하셨다. "맛있죠?"라며 활짝 웃으시고 먼저 간다며 인사하셨다. 왜 아주머니, 아저씨가 주말마다 이 곳을 찾으시는지 알 것 같았다. 다음에 부모님께서 서울에 오시면 모시고 오고 싶은 곳으로 마음에 새겨두었다.


삼청동 수제비 정보


동동주 반되를 마신 후 친구 한 명은 취기가 올라오고, 나는 졸음이 몰려와 생각보다 일찍 헤어졌다. 다음부터는 밖에서 발효주를 마시지 말자고 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렇게 맛있는데.


한파가 몰아닥친 주말, 추운 날씨에 즐기기 좋은 삼청동의 맛이었다. 친구들이 함께해줘서 더없이 즐거웠다. 취업 후 지방으로 발령받았는데 우리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취업 턱을 쏜 친구한테도 진심으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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