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꽃길만 걸으세요~

2019년 4월 6일 토요일의 지영_할머니 팔순 잔치

by 이수댁

2019년 4월 16일, 토요일 아침이지만 할머니 팔순 잔치를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했다. 지난 설에 할머니께서 손주들에게 미션을 주셨다.


우리 손주들~
할머니 팔순 때 그동안 할머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편지를 써다오.


대전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카페에 앉아 할머니를 떠올리며 편지를 썼다. 늘 우리가 건강하기를, 꽃길만 걷기를 응원해주셔서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할머니께서 늘 강조하신 것처럼 앞으로도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잘 살겠다고 말씀드렸다. 마주 앉은 남자 친구도 덩달아 편지를 썼는데, 할머니께서는 예비 손주 사위에게까지 편지를 받았다며 무척 좋아하셨다.


요즘은 너무 흔한 말이지만, 할머니께서 늘 주문을 외우듯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 손녀딸~ 꽃길만 걸어라.


이 한마디 속에서 우리가 사뿐사뿐 행복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쩌면 그런 진부한 말속에 서로 전해야 할 마음이 모두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런 간단한 말조차 전하는 여유와 관심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요즘처럼 봄꽃이 활짝 핀 계절에는 마음도, 걸음도 가벼워진다. 후다닥 지나쳐가던 길 위에서 잠시 멈춰 꽃을 한번 바라보게 된다. 다시 바쁜 발걸음을 재촉할지언정, 잠시 바라본 꽃의 고운 자태에 얼굴에는 미소가, 마음에는 행복이 번진다.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 자체가 정말이지 고맙다.


꽃길, 꽃비, 꽃날, 꽃미남 등 '꽃'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모두 좋은 의미가 된다. 나에게 할머니는 그런 존재이다. ‘꽃’을 바라보며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할머니’를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하하호호 웃으며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라고 다독여주시는 마음이 느껴져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나갈 힘이 생긴다.


일평생 자식들을 위해 참고, 희생하며 사신 할머니.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여자의 한 많은 일생이지만, 모진 풍파를 인내하며 사신 세월이 더욱 깊고 넓은 품을 만들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작은 한마디가 내 마음을 그토록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듯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식당에 도착하니 할머니께서는 자줏빛 한복을 직접 리폼해서 만드신 옷을 입고 계셨다. 신발까지 분홍색으로 깔맞춤을 하셔서 '분홍 공주'라고 불러드렸다. 화장도 하시고 화사하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께서도 자식들과 며느리, 손주들에게 편지를 써서 직접 낭독해주셨다. 식당 아주머니께서 그 광경을 보시며 할머니 너무 멋지시다고, 저렇게만 나이 들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할머니의 깜짝 편지 낭독 속 진심이 담긴 마음에 가족들 모두 큰 감동을 받았다.



엄마께서는 말씀하셨다.
“할머니께서 마음의 부자이시기에 가족들에게 똑같이 봉투 만들어 주신 게 더 크게 다가오던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념일에 받으려는 마음만 있잖니~ 각각의 봉투에 담은 11만 원 중 10만 원은 살면서 할머니께서 주시는 종잣돈이라 생각하고~ 1만 원은 용돈으로 쓰라고 하시더구나~ 정말이지 훌륭하신 할머니~ 큰 어르신으로 살아가시는 할머니가 계시기에 우리 집에 크나큰 도서관 한 채가 든든하게 있는 것 같아~”



할머니께서는 이 날 나에게 또 다른 봉투를 건네셨다. 결혼 준비에 보태 쓰라고 편지와 함께 용돈을 준비해주셨다. 그것도 예상치 못한 금액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즉각, 크게 크게 감사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일주일이 지난 후에 전화를 드렸다.

“우리 예쁜 손녀에게 적은 금액이지만, 필요한 데 쓰렴~”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할머니... 나도 저렇게 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할머니, 앞으로도 웃으면서 건강하게 지내세요! 할머니도 꽃길만 걸으세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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