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분만 이야기
2020년 10월 10일(토) 13시 9분, 드디어 사랑하는 딸과 만났습니다.
‘빵이’라는 태명에 걸맞게 ‘빵(0)’이 많이 들어간 날짜에, 빵빵한 볼을 갖고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분만 직후에 아기를 받아주신 의사 선생님께서 태명을 들으시고 빵을 좋아해서 빵이인 줄 알았다며, 요즘 재밌는 태명이 많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지빵(남편이 부르는 지영의 애칭)이의 주니어라서 빵이라고 설명드렸어요. 아기의 이름은 ‘문지윤’입니다. 엄마 이름(‘지’영)과 아빠 이름(경’윤’)에서 한 자씩 따왔습니다.
10월 8일(목) 18시 30분경 건조기 청소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속옷이 축축해진 게 느껴졌습니다. 5일(월)부터 이슬이 비쳤던지라 분비물이 많은 건지, 양수인지 헷갈렸어요. 긴가민가한 상태였기 때문에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처음에는 긴가민가 하셨는데 검사 결과 양수였어요. 바로 분만실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양수가 새면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에 72시간 내에 분만을 해야 안전하다고 합니다. 아직 자궁문이 많이 열린 상태가 아니라 유도분만을 하게 되었고, 자궁수축제를 맞기 시작했어요. 오전 9시 50분부터 자궁수축제 강도를 1단계, 2단계로 천천히 높여갔어요. 오후 14시 35분쯤 자궁문은 넉넉한 1cm였는데, 저녁이 되어도 차도가 없더라고요. 종일 진통으로 고생했지만 19시 35분에 자궁 수축제 투입을 멈췄고, 21시가 넘어서야 죽을 반 그릇 먹을 수 있었습니다. 진통하느라 배고픈 줄도 몰랐는데 따듯한 죽이 참 맛있더라고요.
자궁수축제 투입은 멈췄지만 자궁수축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분만실 침대는 딱딱해서 허리가 너무 아팠고, 한 시간에 한 번씩 눈을 떴던 것 같아요. 남편도 작은 소파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화장실에 갈 때 이동을 도와주고, 진통이 심할 때는 골반과 척추 마사지를 해주었습니다. 출산 동반자를 ‘둘라’라고 하는데 ‘문 둘라 씨’가 옆에서 함께 호흡하고, 마사지해주고, 오른팔에 굵은 주삿바늘을 꽂고 있는 절 위해 머리도 묶어주며 보살펴 주었습니다. 출산 후 저는 남편 얘기를 할 때 눈물을 글썽이게 되었는데, 가장 가까이에서 같이 고생해준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고마워요, 문 둘라 씨!)
밤새 아팠지만 새벽에 내진을 할 때 자궁문이 2cm 열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당직 의사 선생님께서 3~4cm 정도 열렸다고 확인해주셨습니다. 진진통이 오고 자궁문이 3cm 정도 열릴 때까지는 집에서 편하게 진통을 하면 좋았겠지만, 양수가 새는 상황에서 빠르고 안전하게 병원에 오는 것도 중요했던 것 같아요. 관장을 하고, 무통주사를 맞고, 자궁수축제 강도를 조금씩 높여가기로 했습니다. 전날부터 계속 제대로 못 먹었기 때문인지 관장할 때 권장하는 10분을 꼬박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무통주사를 맞았던 순간도 기억에 남습니다.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힘을 다 뺀 상태로 척추에 주삿바늘을 꼽는데, 두렵다는 생각에 힘을 주면 다칠 수 있습니다.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려고 이완하는 호흡법을 계속했더니, 마취통증의학과 원장님께서 지금 호흡하는 방식도 힘이 들어가는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호흡해야만 진통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힘을 빼고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무통주사를 맞는다고 해서 진통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취로 인해 다리가 저릿저릿하기도 하고, 넘어질 수 있어서 화장실 갈 때도 보호자 동반이 필수가 됩니다. 무통주사를 맞고 조금 더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진통이 올 때는 호흡을 하면서 지나가기를 기다렸어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전체적인 출산 과정에서 고통을 줄여주어 도움이 되었습니다.
진통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옆에서 손을 꼭 잡아주고, 마사지도 해주었는데 마지막에는 화장실 한번 가는 동안에도 진통이 찾아와서 침대에 앉아서 한번, 화장실 입구에서 한 번씩 멈췄어요. 그때 간호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셨고, 너무 힘들어하는 저를 발견하고 내진을 한번 더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초산이고, 자궁문 열리는 시간이 오래 걸렸기에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아뿔싸! 아기 머리가 보인다고 하네요. 바로 분만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은 분만 준비로 분주해졌고, 힘주기를 해보자고 하셨습니다. 분만을 위해 의사 선생님께서 도착하신 시간이 오후 12시 50분이었으니, 3cm에서 10cm로 열리기까지 3시간에서 3시간 반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갑자기 분만으로 진행되어 놀라기도 했지만, 정상적으로 자연분만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젖 먹던 힘까지 내보기로 다짐했습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초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주시면 용기를 북돋아주셨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도 바빠서 중간에 와보지 못했는데, 진행이 잘 되었다며 힘주기를 해보자고 말씀하셨어요. 그 사이 제모도 해주셨을 텐데 무통주사로 하반신 감각이 없기도 했고, 정신이 없어서 느끼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아기가 나올 수 있도록 지금까지 연습한 출산 호흡법을 최선을 다해 적용했어요. 그리고 13시 9분에 자연분만을 했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힘을 빼기보다 최대한 집중해서 힘을 주었고, 차분하고 우아하게 잘했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막달에 출산 호흡법과 힘주기를 연습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배 속에 있던 아기가 배 위로 올라왔을 때 꼭 쥔 주먹과 작은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아기가 나온 후 이완 호흡법을 하면서 태반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고요. 바로 후처치를 진행해주셨습니다. 감격스러움과 해냈다는 안도감에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후에 자궁 수축이 잘 되고 있는지 배 위를 꾹꾹 눌러보고, 자궁이 깨끗하게 비었는지 초음파로 확인해주셨어요.
가족분만실에서 진통, 분만, 후처치, 회복을 모두 한 장소에서 진행할 수 있었다는 점이 편안했습니다. 남편도 진통할 때부터 옆에서 도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어요. 그 후에 계속해서 혈압과 체온을 측정하면서 첫 소변을 정상적으로 보는지 기다렸습니다. 커진 자궁으로 인해 방광이 옆으로 밀리면서 방광이 제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는 건 중요한 일이더라고요. 입원실로 옮긴 후에도 소변을 시원하게 보는지 확인하셨습니다. 요의를 못 느껴도 소변줄로 빼보니 소변이 많이 차 있더라고요.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회복을 잘해야겠다고 느꼈습니다.
출산 후 2박 3일 간 입원하고, 9박 10일 간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하면서 산부인과 외래가 있었습니다. 회음부 절개한 부위를 두 번 소독하고, 자궁수축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오로 배출이 잘 되고 있는지 등을 초음파로 확인했습니다. 또한, 자연분만 일주일 후에 실밥을 풀었어요. 소독하고, 실밥을 풀 때 통증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도 잠깐의 고통을 겪고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는 게 중요하니까 잘 참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보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생생한 출산의 시간! 그렇지만 분명한 건 출산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아기와 만나는 뜻깊은 열정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건강하게 출산 여행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그렇게 저는 엄마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