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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Mar 07. 2017

새 학기, 올바른 통합수업을 위하여

김예원 변호사의 장애인 인권컬럼

  

글쓴이 : 김예원 변호사     

장애인권법센터 대표/변호사. 사법연수원을 41기로 수료한 후 법무법인 태평양이 설립한 공익재단법인 동천 소속 공익변호사를 거쳐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에서 상임변호사로 일했다. 6년간 심각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를 구조하고 대리하였고, 장애인 인권 관련 공익소송을 기획하여 수행하였다. 현재 다양한 장애인 차별과 인권침해 사례를 법률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한 인권교육을 활발히 하고 있으며, 장애인 인권 관련 제도와 정책 개선을 위한 매뉴얼, 연구, 논문을 지속적으로 집필, 발표하고 있다.     


출장이다. 다둥이 엄마 민영씨를 만나야 하는데, 좀처럼 시간을 내시기 어렵다고 해서 직접 만나러 가는 길이다.     

민영씨에게는 세 아이가 있다. 일찍 결혼해서 첫째와 둘째를 빨리 낳았다. 그 둘은 중학생이 되었다. 갑자기 셋째가 생겼다고 한다. 빠듯한 형편인데다가 주말부부라 독박육아까지 너무 힘든 상황이어서 낳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생명이었다. 초반에 위험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생명을 지키려 꼬박 3주를 거의 누워있다시피 했다고 한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아이도 둘이나 있는데 그렇게 힘들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뱃속 씩씩이를 위해서 버텼어요.”     


씩씩이는 예정보다 일찍, 작게 태어났다. 사내아이였고, 준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셋째는 알아서 큰다고 하던데, 준성이는 이상하게 좀 느렸다. 생 후 한 달이 지나도 고개를 잘 못 들었다. 8개월이 되어서야 뒤집기를 겨우 했다. 돌이 되었는데도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생후 2년이 지나서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 판정을 받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매일 매일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지내온 세월이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과정도 더 힘이 들었다. 인근의 초등학교에서는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통합수업이 어렵다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초등학교는 나름 그 지역에서는 내로라하는 학교였기에 좋은 수준의 통합교육이 잘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준성이를 씻기는 데 민영씨는 준성이 오른 팔뚝에 거뭇한 점이 생겨 퉁퉁 부어오른 것을 발견했다. 그 점이 연필심이 박혀서 생긴 상처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에 이틀이 꼬박 걸렸다.      

민영씨는 전화 통화할 때는 담담한 것 같더니, 막상 만나고 보니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제 시작이라고.. 그렇게 마음을 매일 다잡고 힘들게 보낸 학교인데.. 이렇게 입학 하자마자 일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냥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만 싶은 심정이에요.”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애써 눈물을 참는 것이 참 어려웠다. 함께 눈물을 닦으며 충분히 그 마음을 공감해드리니 이야기가 술술 시작되었다.      


“반 아이들이 처음에는 우리 준성이 잘 이해해주고 잘 웃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우리 준성이는 여태 자라면서 싱크대 서랍장 한 번 안 뒤지고, 자기 두 발을 한꺼번에 공중으로 스스로 떼며 뛰어본 적도 없이 조용하고 활동성이 적은 아이거든요.”     


실제로 준성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남자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양에 비하여 많이 조용했다. 눈을 잘 마주치지 않고 나지막히 혼잣말을 하곤 했다. 가끔 콧소리와 함께 선사하는 미소가 사랑스러운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담임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잠시 생각하더니 민영씨는 담임 선생님을 좋은 분이라고 소개했다.     


“나이가 좀 있으신 분이라 처음부터 저희 아이를 보고 불쌍하고 가엾다고 하시면서.. 잘 돌봐주실 것 같더라고요. 다른 아이들에게는 엄하게 해도 저희 아이는 많이 봐주시려고 하는 것 같고요.”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 때부터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지만 민영씨는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은 다둥이 엄마라 준성이의 학교생활에 대하여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어려워했다. 대신 준성이와 몇 년을 알고 지낸 같은 반 호준이 엄마를 소개해주었다. 호준이 엄마가 그 반 학부모회 반대표를 맡고 있기에 반 사정을 잘 알 것 같아서였다.          


상담을 마치고 나와 호준이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준성이 어머니 통해서 연락드린 김예원 변호사라고 합니다. 몇 가지만 여쭈어보려고 하는데 잠시 시간 괜찮으신지요?”     

“네 준성이 엄마한테 연락 받았어요. 어떤 게 궁금하신가요?”     


“다름이 아니라 준성이 학교생활 관련해서 혹시 호준이가 집에 와서 했던 말 중에 기억나시는 게 있으신가 해서요.”     


통화는 30분이 넘게 계속되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에 이 일이 발생했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찾을 수 있었다. 담임 선생님의 지나친 ‘구분짓기’가 감수성이 예민한 학기 초에 큰 부작용을 낳았던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50대 후반의 여성이었고,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는 분이었다. 장애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지

적’장애를 ‘지체(정신지체-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말)’장애라고 부르셨다. 그 선생님에게는 ‘장애’가 그저 불쌍하고 가엾기만 한 것이어서 입학 첫 날부터 ‘준성이를 위해서’ 준성이의 장애를 같은 반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고 한다.     




“애가 ‘정신이 온전치 않다’면서 과잉보호를 하시더라고요. 저희 호준이랑 같은 분단이라 청소 당번을 같이 했는데 선생님이 준성이는 정신에 문제가 있으니 돌발행동을 할 지도 모른다면서 청소도 안 시키고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했대요.”          


문제는 이러한 선생님의 행동이 반 아이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금’을 더욱 선명하게 했다는 것이다. 새학기 낯선 환경에 예민한데다 감수성이 한참 민감한 시기의 아이들은 그 ‘마음의 금’을 눈빛으로, 언어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한 두 명이 그런 태도를 보이자 반의 분위기는 금방 그렇게 동화되었다. 그리고 결국 신체적인 폭력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상담을 마치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상담을 의뢰한 민영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마음을 좀 어떠신가요? 이 사안은 바로 학교폭력 사건으로 신고해서 법대로 절차를 밟는 것이 물론 가능합니다만, 혹시 이렇게 하시면 어떨까요? 이번 한 번만 고소나 신고를 보류해보시고 학급 전체를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가 교감선생님께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아이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역할극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마음의 금을 옅게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으로 보여서요. 물론 담임 선생님도 꼭 그 교육에 참석하셔야 하고요.”     


다행히 민영씨는 ‘법대로 하지 말자’는 변호사의 황당한 제안을 믿고 따라 주셨다. 이후 준성이의 학교생활은 훨씬 수월해졌다. 가해자의 비용으로 치료도 잘 마쳤다. 민영씨가 마음의 짐도 덩달아 조금 가벼워졌다.          

장애인특수교육법에 의하여 이제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통합교육은 보편적이다. 제도만 그렇지 우리의 마음과 인식은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대놓고 차별하지 않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는, 피부에 직접 느껴지도록 ‘장애를 구분짓는 것’도 ‘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      


새 학기 올바른 통합수업 비법은 어렵지 않다. 그냥 ‘같은 사람’임을 자연히 느끼게 하는 것, 입장을 바꿔보면 어떨 지 한번 쯤 더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무난하게 즐거운 새 학기를 열 수 있음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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