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성 변호사의 생활인문학
상대방이 나의 어떤 점을 지적한다. 매우 아프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상대방의 지적이 아픈 것은
그것이 옳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지적에 변명하거나 반론을 제기하고 싶어진다. 인정하는 것은 패배라는 생각에. 그러면서 그 사람의 과거 잘못된 언행을 찾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신음어’에서는 쿨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을 때는 메신저를 공격하라.’
정치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수(術手)다.
하지만 그 지적을 오롯이 나의 발전으로 삼는 것이 큰 사람의 대처법이다. 그 지적만 스폰지처럼 흡수하라. 고마움의 말까지 전할 수 있다면 더 멋질 것이다.
사람이란 항상 잘못을 범하는 존재다. 하지만 잘못을 저질렀다는 자체보다는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이 더 큰 허물이라 했다.
과이불개 시위과의(過而不改 是謂過矣 ; 잘못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잘못이다)
- 논어 위령공편 -
나아가 잘못이 있는데 고치기를 주저하면 같은 잘못을 다시 범할 위험이 있고 잘못은 또 다른 잘못을 낳을 수 있으므로 잘못을 고치는 데 꺼리지 말고 즉시 고치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과즉물탄개 (過則勿憚改 : 잘못을 했을 때는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한다)
- 논어 학이편 -
이렇듯 진정한 자기계발은 끊임없이 주위의 자극에 긍정적으로 반응해 가는 ‘진행형’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