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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May 07. 2017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문질빈빈)

조우성 변호사의 논어노트

그럴 때가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표현이 서툴러서 오해를 받거나 내 진의(眞意)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

야속하다. 왜 사람을 몰라줄까.

사람을 제대로 아는 것(지인 ; 知人)을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한 공자는 이런 경우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내면의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이지. 겉으로 드러난 바가 다소 서툴다고 하더라도 이는 허물이 되지 않는다.’고 했을까. 왠지 그랬을 것 같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공자의 언급이 의외다.      


子曰, “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

자왈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

- 논어 옹야편 -      

공자는 말했다. “바탕이 꾸밈을 이기면 거칠고, 꾸밈이 바탕을 이기면 번지레하니, 바탕과 꾸밈이 잘 어우러진 뒤에야 군자가 될 수 있다.”


논어에서 꽤 유명한 사자성어인 ‘문질빈빈’이 나오는 대목이다.





용어가 조금 어려운데, 약간의 해설이 필요하다.     


대립되는 개념이 나온다. 질(質)과 문(文)


질(質)은 그 사람됨의 바탕(내면에 치중)을 의미한다면,
문(文)은 겉으로 드러난 말과 행동을 의미한다.     

그 사람의 좋은 내면이 겉으로 제대로 드러나지 못하는 경우, 즉, 질이 문보다 앞선 질승문(質勝文)의 경우(속은 좋은데 겉포장을 제대로 못하면)에 대해 공자는 ‘거칠다(野)’고 했다.

반대로 내면은 부실한데 겉으로만 포장을 잘하는 경우, 즉 문이 질을 누르는 것(문승질 ; 文勝質)에 대해 공자는 ‘번지레(史)하다’고 했다.


둘 다 바람직하지 않으며, 문과 질이 잘 어우러져야(빈빈 ; 彬彬) 능히 군자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서의 빈빈(彬彬)은 잘 섞여 있는 모습을 가리킨다.      



왠지 ‘실질, 내면’을 강조하는 공자의 가르침에는 좀 어긋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文’을 ‘그냥 꾸밈’이 아닌 ‘예의, 에티켓’으로 치환해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작게 보면 에티켓이고 크게 보면 규범, 예의범절, 예식, 바른 절차, 편한 절차이다.


서로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약속과 절차가 필요하다. 절차가 서로 다르다면 편견이 생기고 무질서가 커지며 혼돈이 커지기 때문에 이것을 중화하는 꾸밈文이 필요하다. 인사 같은 겉치례는 필요 없다는 생각에 출근하는 동료를 쳐다보지도 않는다면 조직분위기는 어떻게 되겠는가?


곧고 강직한 것은 좋은 내면(질 ; 質)이다. 그러나 거기에 적절한 예절이나 법도가 가미되지 않음으로 인해 시기와 장소, 필요에 따라 구분함이 없이 초지일관 처음부터 끝까지 곧고 강직함만을 강조한다면 그는 성미가 까다롭고 고집 센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아무리 내면에 선의를 갖고 한다 하더라도 투박하게 사람을 대하고 사소한 예의를 지키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내 선의를 몰라주는 거요?’라고 항변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사람은 자기가 대우받는 대로 남을 대우해주려 한다.


내 마음 속의 선의를 ‘외부에 제대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결코 가볍게 볼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 질승문(質勝文)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데도 겉으로 사랑을 포장해서 표현하는 경우. 문승질(文勝質)


둘 다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공자가 생각하는 이상형의 인간인 군자(君子)는 내면의 마음 못지않게 외면의 형식과 표현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군자의 길은 이렇게 멀고도 험하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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