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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un 15. 2022

비우고 덜어낸다는 것



#1


40과 50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40은 30대의 열정을 그대로 품으면서도 무언가 완성을 해내야 한다는 목적성을 인식하는 나이다.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내 제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야망을 갖고 있어야 한다.


50은 40보다는 확실히 꺾인 느낌이다. 40대와 같은 열정으로 버티기에는 우선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그리고 사회적인 여건 역시 뒤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20대 못지않게 방황을 눈앞에 둔 시기가 50대인 듯 하다.


50이 넘어서도 30, 40대처럼 열정적으로 사는 분들을 보면 존경스럽다. 하지만 50대는 조금 다른 모습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2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2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접하게 되었다.


첫 번째는 <장자> 외편 20 산목편(山木編)에 나오는 ‘빈 배 이야기’(虛舟)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장자는 강에서 홀로 작은 배를 타고 명상에 잠기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장자는 여느 때처럼 눈을 감고 배 위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배가 장자의 배에 부딪쳐 왔다. 화가 치민 장자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무례한 인간이군, 내가 눈을 감고 명상중인데 어찌하여 내 배에 일부러 부딪친단 말인가?” 장자는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며 부딪쳐 온 배를 향해 소리를 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배는 비어 있었다. 아무도 타지 않은 빈 배였다. 그저 강물을 따라 떠내려 온 빈 배였던 것이다. 순간 장자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후에 장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만일 그 배가 비어 있다면 누구도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내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나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상처 입히려 들지 않을 것이다. 내 배가 비어 있는데도 사람들이 화를 낸다면 그들이 어리석은 것이다. 내 배가 비어 있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이 화내는 것을 즐길 수 있다. 텅 빈 공간이 되어라.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게 하라.”


#3


2022. 6. 15.자 중앙일보 <백성호의 우문현답>의 한 구절이다.


불력이 높으신 무비(無比) 스님과의 인터뷰.


“하수들이 바둑을 둘 때 고수의 눈에는 다 보인다. 어디에 두면 죽는지, 어디에 두면 사는지 말이다. 곧 죽을 자리인데도 돌을 놓는 것이 빤히 보인다.   사람들은 자기 바둑을 둘 때는 수를 놓칠 때가 많다. 반면 남의 바둑에 훈수를 둘 때는 수가 잘 보인다. 훈수 둘 때는 2급 이상 바둑 실력이 더 높아진다고 하지 않나. 왜 그렇겠나. 바둑에 ‘나’가 없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삶에 ‘나’가 없으면 지혜가 생긴다. 그래서 인생에서도 고수가 된다.”


# 4


나이가 들수록 막연하게 ‘비워내고 덜어내야 한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장자의 빈배 이야기와 무비스님의 ‘남이 두는 바둑판이 잘 보이는 이유는 내가 없기 떄문’이라는 이 두 이야기에서 뭔가 번득하고 내 가슴을 치는 가르침이 있다. 


나를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나를 줄이고 나를 다독여서 빈 공간을 만들고 다른 이들이 쉴 수 있는 여지를 두면서 온화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한다면 인생살이는 좀 더 나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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