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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Jun 15. 2022

단상 : 글쓰기와 김밥, 찌개


#1


어릴 때 어머니는 주기적으로 김밥을 싸주셨다. 그런데 그 부속물이 일반 김법과는 다를 대가 많았다. 보통 단무지, 시금치, 고기, 계란 등이 들어가는데, 우리집 김밥은 정체 불명의 야채와 다른 반찬들이 곁들여진 경우가 많았다.


어머니 말씀. “남은 반찬들 처리하느라 김밥으로 말았다.


신기하게도 그냥 밥과 반찬으로 나오면 잘 안먹다가도 김밥으로 말아 놓으면 아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한공기를 그냥 밥으로 먹긴 힘들어도 김밥으로는 금방 해치운다.



#2


추석, 설날, 그리고 제사가 끝나고 나면 며칠간은 차례음식으로 밥을 먹는다. 사흘쯤 지나면 그때부터는 다양한 남은 음식을 버무린 아주 묘한 찌개가 나온다. 어머니 말씀. “남은 반찬을 이렇게라도 처리해야지.”


개별 반찬들이 찌개로 어우러지니 먹을 만했다. 우리 집만 그랬을까? 다른 집도 그랬겠지?



#3


문득 ‘글쓰기’는 이런 김밥말기나 찌개만들기와 비슷한 것 같다.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많은 정보, 좋은 글귀를 접한다. 하지만 그냥 그대로 스쳐 지나가면 흐지부지 기억에서 사라진다. 


시간을 내서 그런 단편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를 하나의 짧은 글로 패키징(김밥말기, 찌개만들기)해 두면 이는 먹기도 좋고 주위에 퍼뜨리기도 좋다.



#4


이런 저런 개인사로 6개월간 김밥을 말지도 찌개를 만들지도 못하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생각들이 그냥 팍팍 떠올랐다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제는 그러지 말고, 일단 있는 재료만으로 김밥과 찌개를 후딱후딱 만들어 내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열심히 김밥말고 찌개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한다.


시간 지나고 보니, 예전에 썼던 글들은 오래 남아서 나를 위로해 주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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