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변호사 Jun 25. 2022

어머니와 가계부


#1


“어무이, 요새도 가계부 쓰십니꺼?”



“그걸 네가 우찌 아노?”



“어릴 때부터 맨날 쓰시는 거 봤는데 그걸 모릅니꺼? 요즘도 쓰십니꺼?”



그러자 어머니는 노트 몇 권을 보여주셨다.



“일단 대략 적어놨다가 나중에 표로 만들어서 정리하고 있는데...”



#2


어머니는 옛날부터 매일 저녁 노트에 열심히 뭘 적으셨다. 한번씩 보면 깨알같은 글씨에 돈과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아버지가 한번씩 “그거 맨날 적는다고 돈이 더 생기는 것도 아니고, 뭘 그리 열심히 적노?”라면서 핀잔을 주시지만 어머니는 한결 같으셨다.



아버지 병원비 등으로 생활비가 부족해서 주위 친구분들에게 돈을 빌렸다가 갚으시고 하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신용을 지키려고 돈을 어렵게 융통하시는 것도 알고 있었다.



#3


변호사가 되어 밥벌이를 시작하게 되자 나는 기회만 되면 어머니께 용돈을 많이 드리려고 노력했다. 평생 돈 때문에 고생하신 것을 알기에 이제는 좀 여유롭게 지내시라는 의미로.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고정적인 수입 외에 한번씩 예상치 않은 수입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난 그럴 때마다 상당한 부분을 어머니께 보내드리면서 뿌듯해했다.



#4


어머니는 내가 보내드린 돈을 정말 다양하게 활용하셨다. 


작은아버지, 고모, 이모 등 친척분들애게 때가 되면 용돈을  드리셨다. 항상 “우성이가 삼촌 드리라고 돈을 줬어요”라는 말씀과 함께.



난 가끔씩 집안 어르신들로부터 감사 전화를 받았다. 



“하이고, 우성아. 네 결혼할 때 제대로 부조도 못했는데, 이번에 또 엄마편으로 용돈을 보냈네. 항상 건강하거레이.”



사촌 동생, 오촌 조카에게까지도 돈이 자주 흘러갔다. 얼마 되지도 않은 돈으로 어찌나 다양한 곳에 뿌려지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5


또 적금을 계속 들어놓으셔서 내 두 여동생들이 필요할 때 긴급 자금으로 도움을 주셨다. 



정작 아버지, 어머니는 별로 돈을 쓰지 않으셨다. 



“우성아. 요새 다들 어렵다카는데, 너거 회사는 좀 어떻노? 그동안 네가 준 돈을 모아놓은 게 있는데 이걸로 좀 보태라.”



얼마 전 전화가 오셨다. 나는 괜찮다고 손사례를 치면서도,대체 어머니는 어떻게 돈을 모으셨는지 궁금했다. 내가 많이 드린 것도 아닌데.



#6


오늘 부모님 댁에 갔다가 예전의 그 가계부 생각이 나서 여쭤본 것이다. 


여전히 쓰고 계시더라. 100원 단위까지 빼곡이 적혀 있었다.



울 어머니. 작년에 암 선고 받으시고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까지 견뎌내셨다. 그리고는 여전히 자식들 걱정이시다.



우리 어무이, 짱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믿었던 사람이 가장 아픈 공격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