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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Aug 25. 2022

나의 독서법과 글쓰기

[책건문을 통한 입체적 독서법과 글쓰기]

편안하게 아무 부담 없이 휴식 시간에 책을 읽는 가벼운 독서가 있다. 에세이나 소설은 이 방식이 어울린다. 하지만 때로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기도 한다. 대부분의 실용서가 이에 해당하는데, 이런 독서가 더 흔하다. 그런데 문제는 읽고 나서 돌아서면 책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라면서 자조 섞인 변명을 해 보기도 한다.


예전에 어느 선배 변호사님은 ‘고급 유머’를 수집해서 독서카드에 빼곡히 적어 다니셨다. 주제별로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는 필요한 상황에 적합한 유머를 찾아 꺼내 말씀하시면서 좌중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셨다. 사실 그렇게 적어놓지 않으면 정작 필요할 때 써먹지 못한다. 그 선배님의 노력이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필자는 대중강연이나 집필을 자주 하기 때문에 항상 소재에 갈증을 느낀다. 논리를 펴면서 예를 들더라도 진부한 클리셰가 아니라 참신한 내용을 쓰고 싶다. 그 소재의 갈증을 채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독서다.  


이렇듯 필자의 독서는 강연과 책을 쓰는 데 필요한 재료를 모은다는 명확한 ‘목적’을 갖고 있다. 책을 골라서 읽고 그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하는 나만의 방법론을 공개한다.



1단계 : 책을 고른다.  


나쁜 책은 없다는 것이 내 주의다. 모든 책은 가르침을 준다.


지식을 쌓고 싶은 특정 분야 관련하여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구매한다. 중세 시대 책값은 엄청나게 비쌌다. 2천 쪽의 성경 1권 제작에 필요한 수도사들의 인건비와 양피지 가격을 지금 가치로 환산해 보면 책 1권에 약 2억 원 정도라고 한다. 인쇄본 서적이 등장하기 이전 15세기 영국에서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했다는 캔터베리 대성당의 도서관 장서가 2천 권이었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도서관도 300권에 불과했단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대학이나 중용 같은 책은 좋은 면포 3-4필은 주어야 살 수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면포 3필은 쌀 30말에 해당하고 논 3마지기의 1년 소출이었다. 대략 책 1권에 최소한 500~600만 원은 했던 셈이다. 그에 비하면 요즘 책값은 거의 헐값 수준이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작가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짜낸다. 그런 소중한 책을 커피 몇 잔 값에 살 수 있다니 얼마나 횡재인가. 



2단계 : 책을 읽는다.


나는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서 읽기보다는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방식을 택한다(예전에 학창시절 공부할 때도 계속 과목을 바꿔가면서 공부할 때가 더 잘 됐다. 이건 개인차가 있을 듯). 머리말은 반드시 읽는다. 필자도 책을 출간해 보면서 느낀 점이지만, 머리말에는 저자의 집필의도를 명확히 밝힐 수밖에 없다. 길잡이를 위해서라도 머리말은 정독해야 한다. 그다음에 목차를 훑어보면서 관심이 가는 부분을 먼저 읽는다. 징검다리 건너듯 책을 보는 방법이 처음에는 어색할지 모르나 훨씬 효율적이다.


책상, 식탁, 침대 옆, 화장실 등에 한 권씩 책을 놓아두고는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해당 책을 읽는다. 보통 한 번에 7~8권을 동시에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읽으면서 의미 있는 부분은 줄을 긋기보다는 해당 페이지 윗부분을 접어 둔다. 내가 생각하는 '책 본전 뽑는(?) 기준'에 따르면 적어도 한 권의 책에서 ‘인용할 만한 문장 20개 이상, 칼럼 소재 5개 이상, 강의 때 인용할 만한 소재 3개 이상’ 정도는 나와줘야 한다. 베스트셀러로 소문난 책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책에서 좋은 문구를 발견할 때면 기쁨이 배가 된다.



3단계 : 책건문 작성


이 부분이 중요하다. 읽은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부분을 써보고 내 생각을 덧붙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작업을 ‘책건문’(책 속에서 건진 문장)이라 부른다. 내가 접어 두었던 부분을 발췌해서 원문 그대로 블로그에 적고 인용을 표시한다. 그리고 아랫부분에 ‘내 생각’이라는 부제를 달고 해당 인용문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적는다. 생각이 다소 성숙되지 않더라도 일단은 써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책 내용만 적을 때보다(책 속의 좋은 문구를 수집하는 방법은 흔하다), 말이 되건 안되건 내 생각을 추가로 적는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떨 때는 의도적으로 저자와 반대되는 입장을 써보려고 노력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 논거를 만들다 보면 다양한 관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인용문구보다 내 생각을 더 멋있게 쓰고 나면 정말 뿌듯해진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명제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 내 언어가 확장되면 내 세계도 확장된다는 의미다. 독서는 다른 사람의 언어를 내 언어로 섭취하는 과정이다. 확실한 성장의 방법이다. 



4단계 : 강의나 집필 때 인용


쌓인 책건문을 써먹는 단계다. 집필이나 강의 때 책건문을 의도적으로 적극 활용한다. 나는 책건문 작업할 때 일정한 태그를 붙여서 분류해둔다. 예를 들어 ‘노력’이라는 태그를 붙여놓았다면, 나중에 전심전력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주제의 강연을 할 때 해당 책건문을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한번 활용하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가득히 쌓여있는 책건문을 보면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책건문 파일은 나의 무기창고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이미 축적된 책건문을 계속 열람한다. 머릿속에 집어넣는 작업을 통해 정작 필요할 때 꺼내 쓰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책을 깊이 있게 읽어가다 보면 생각의 지평이 넓어짐을 느끼는데 나는 이 과정을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어떤 분야의 책을 정해서 본다고 치자. 막상 독서하다 보면 '아하 이 분야에 이런 쟁점들이 있었구나. 오호, 좀 더 공부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다시 새로운 책으로의 여행이 계속된다.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면 의문이 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조금씩 알다 보면 더 궁금한 것이 생긴다. 따지고 보면 독서라는 행위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상황(절대적 무지)'으로부터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는 상황(상대적 무지)'으로의 여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되면, 어디를 어떻게 탐구해야 할지 나아갈 방향이 보이니. 그래서 책은 또 다른 책을 부르는가 보다.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두보는 `독서파만권(讀書破萬卷) 하필여유신(下筆如有神)`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책 만 권을 읽으면 신들린 듯이 글을 쓸 수 있다.’는 의미다.  


Input이 충분해야 Output이 따라줄 수 있다는 점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Input이 아니라 책건문 작업을 통해 쓰기와 결합된 Input을 하게 되면 훨씬 더 제대로 책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융화되어 멋진 결과물(Output)이 나올 수 있다.



대화는 재치 있는 사람을, 글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 프랜시스 베이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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