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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Aug 25. 2022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 과연 좋은 걸까?]


#1


모 스타트업 회사 L대표는 자기 성격을 ‘좋고 싫음이 분명하며 맺고 끊음도 확실하다’고 설명한다. 그 설명에는 분명 자부심이 깔려 있다.  자기는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애매하게 처신하는 사람을 도저히 참지 못한단다. 그런 사람은 직원으로도 뽑지 않을뿐더러 거래 상대방으로도 낙제점을 준다고 했다.


이에 대해 L대표 부모님은 사람이 좀 둥글둥글해야 한다고 충고를 하신다는데, 자기로서는 분명한 성격이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갖춰야 할 중요 덕목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L대표를 보니 예전 내 생각이 났다. 나도 30대 때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살아보니 그런 태도가 꼭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나 할까.


#2


좋고 싫음이 분명하며 나아가 이를 외부로 딱 부러지게 표현하는 사람은 그 이면에 ‘내 판단이 옳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그런 전제가 있기 때문에 평가를 내리고 그 평가에 따라 말과 행동을 단호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 전제가 무너지더라. ‘내 판단이 과연 옳단 말인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나?’


왜 저 사람은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왜 자기 입장을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서 답답하게 구는 걸까.

사람이 이상해서? 사람이 못나서? 아니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 사람의 사정이 있었음을 한참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를 알고 난 후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3


사람의 지문(指紋)은 서로 다 다르다. 80억 인구의 지문이 다 다르기에 지문만 알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 그만큼 특유한 것이 지문이다.


이렇듯 지문이 사람마다 다를진대 그 사람의 상황이나 속사정, 생각이 어디 같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들어보나 마나 뻔해, 저 사람 생각은 이런 거야’라며 넘겨 짚는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건방진 생각이었는가를 깨닫고 나서는 함부로 속단을 못하겠더라.


그런 점에서 요즘 유행하는 MBTI 성격분석에는 분명 미덕이 있다. ‘아, 저 사람은 도저히 나와는 다르게 생겨먹은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니 말이다.


# 4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여지(餘地)를 두려고 노력한다. 뭔가 해결을 봐야 할 상황이 되어도 상대가 굳이 이에 따르지 않으면 지금 당장 무 자르듯 하지 않고 시간을 더 두고 생각하자는 식으로 에어백을 설치한다.


시간이 좀 흐르고 상황이 정리가 되면 대부분 사실이 드러나고 제 자리를 찾아가더라. 내가 독촉해서 답을 얻으려 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레 일이 마무리되는 경험을 여러번 했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은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도 했고.


내가 물은 말에 반드시 상대방의 답변을 들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마라. 상대방이 대답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답을 않는 것도 하나의 대답일 수 있다.

 

#5


나는 L 대표에게 내가 좋아하는 채근담의 한 구절을 들려주면서, 아마도 부모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이런 거 아니겠냐, 그리고 사람이 좀 넉넉한 품이 있는게 보기도 좋다고 에둘러 말했다.   


"좋고 싫은 마음이 너무 확연하면 사물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현명한 것과 어리석음을 구별하는 마음이 너무 뚜렷하면

사람들과 오래 친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은 안으로는 엄하고 분명해야 하지만

밖으로는 언제나 원만하고 넉넉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좋은 것과 추한 것이 균형을 이루게 되며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모두 이익을 누리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만물을 탄생케 하고 기르게 되는

생성의 덕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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