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게 하는 문구(6) - 타증불고
#1
변호사로서의 삶은 승소와 패소가 계속 이어진다. 열 번 이가다가도 한 번 패소하면 속이 쓰리는 것이 이 바닥이다.
나는 예전부터 승패에 너무 민감해하는 편이었다. 대형 로펌에 있을 때, 승패에 다소 초월한 선배들을 볼 때면 좀 무책임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라는 선배의 말이 온전하게 와닿지가 않았다.
그런데 패소한 한 사건 때문에 멘탈이 나가서 다른 사건에까지 악영향을 주는 경험을 몇 번 하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내 직업상 피할 수 없는 속성인데, 지나간 패소 사건에 너무 힘들어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2
곽태(郭泰)는 후한시대 저명한 유학자였다. 어느 날 길에서 앞서 젊은 독장수가 독을 등에 지고 가는 것을 뒤에서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독장수는 실수로 독 하나를 땅에 떨어뜨렸고, 떨어진 독은 박살이 났다. 독장수가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볼만도 한데, 독장수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곽태는 그 독장수의 행동이 묘하다고 생각해서 독장수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독이 깨졌는데 왜 뒤돌아보지도 않냐고. 그러자 독장수가 말했다. “독이 이미 깨어졌는데 돌아본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곽태는 독장수의 이름을 물었다. 그는 ‘맹민(孟敏)’이라 했다.
곽태는 맹민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그에게 학문을 가르쳤고, 맹민은 그 후 이름이 천하에 알려지고 삼공(三公)의 지위에 올랐다.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 타증불고(墮甑不顧:떨어뜨린 독은 돌아보지 않는다).
#3
내가 좋아하는 채근담에서 비슷한 문장을 발견했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오지만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대숲에는 바람 소리가 머물러 있지 않다.
기러기가 차가운 못을 건너가지만
기러기가 가고 나면 못에는 기러기 그림자가 머물러 있지 않다.
그러니 사람은 일이 닥치면 마음에 비로소 일이 나타나고
일이 없어지면 마음은 자연히 비어 있다.
과거를 회상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는 일은 중요하지만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
#4
니체는 인생의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며, 인간의 궁극적인 잠재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초인(Übermensch)’이라 했다. 니체는 ‘Amor Fati(아모르 파티)’는 인간이 초인의 상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삶의 태도라 주장했다.
"아모르 파티"는 라틴어로 "운명을 사랑하라" 혹은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이다. "초인"은 인생의 모든 일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대해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대신 그것들로부터 배우며, 그것들을 개인적인 성장과 발전의 도구로 활용힌다. "아모르 파티"를 실천하는 사람은, 모든 환경과 상황을 받아들이며, 그것들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그것들을 존중하고 가치있게 여깁니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니체의 "초인"에 가까워질 수 있다.
#5
내가 한 일, 했어야 했던 일, 할 수 없었던 일에 대한 고민과 아쉬움은 그것이 나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될 수 있지만, 내가 그것에 과도하게 구속되어선 안 된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 결과 내게 주어진 잔은 기꺼이 마시면 된다. 그 잔이 쓰든 달든. 그렇게 하루 하루를 따박따박 찍고 가는 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