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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치욕을 이겨내라 - 과하지욕

by 조우성 변호사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문구(22) 과하지욕 - 가랭이 아래의 치욕



#1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다가 회사 내에서 입지가 좁아진 측면도 있고(자신이 따르던 이사가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좌초되어 그 line이었던 자신의 입지도 애매해진 것임), 본인도 진작부터 자신이 창업하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큰 뜻을 품고 창업을 한 후배 최모.



그런데 업종 자체가 예전에 있던 회사의 업종과 비슷했기에 예전 회사의 거래업체와 계속해서 업무를 이어가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그 후배는 술에 잔뜩 취해 내 사무실 근처라고 잠깐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해서 사무실로 오라고 했다.



#2


“선배님, 정말 더럽고 치사해서 한 잔 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회사에 있을 때는 제게 꼼짝 못하던, 오히려 제게 잘 보이려고 눈치를 보던 업체, 쉽게 말하면 乙이죠, 이 사람들이 이젠 제게 甲 행세를 톡톡히 하는 겁니다. 조직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특히 오늘은 어찌나 사람 비위를 건드리는지 정말... 판을 엎어 버리고 나오려다가 정말 참았습니다.”



甲의 지위에 있다가 乙로 그 지위가 바뀌는 경우, 소위 ‘정체성 혼란’을 겪거나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다.



#3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면 작은 치욕을 거뜬히 이겨내라



유방이 항우를 이기고 한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바로 대장군 한신(韓信)이다. 하지만 젊었을 때 그는 밥을 빌어먹을 정도로 가난했다. 어머니가 죽었지만 장례식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웠다. 그렇다고 뛰어난 재주나 언변도 없어 그저 남의 집에 얹혀 얻어먹곤 했다. 따라서 그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싫어했다.



#4


그의 고향인 회음(淮陰)에서 있었던 일이다.



어렵게 지내고 있었으므로 다들 그를 보면 업신여기거나 놀려대곤 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 큰 뜻을 품고 있었기에 항상 칼을 차고 다녔던 그였다. 어느 날 그런 모습이 눈에 거슬렸던 깡패(푸줏간 패거리) 중 한 명이 한신에게 말했다.



“네 놈이 덩치는 큼직하게 생겨서 밤낮 허리에 칼은 차고 다니지만 사실 네 놈은 겁쟁이일 뿐이야. 너, 만약 사람을 죽일 용기가 있다면 어디 그 칼로 나를 한 번 찔러 보아라. 그러나 만일 죽기가 싫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라!”



한신은 잠시 생각하더니 묵묵히 그의 바지가랑이 밑을 기어서 나왔다. 이 일로 해서 온 장바닥 사람들은 다들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5


사기 원문에 보면, 한신이 깡패의 가랑이 밑을 기기 전에 그 깡패를 ‘한참 빤히 쳐다보았다(熟視)’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신의 실력이면 그 깡패를 단칼에 베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큰 뜻을 품고 있는 한신이 그 깡패와 싸우거나 그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 그 이후 자신의 계획은 일그러지고 만다. 아마도 한신은 그 깡패를 ‘한참 빤히 쳐다보면서’ 이를 꽉 깨물었을 것이다.



한신이 훗날 크게 출세한 다음 자신을 가랑이 밑으로 기게 했던 그 깡패를 기어이 찾아내서 그에게 작은 벼슬을 주었다. 이는 한신 스타일로 그 깡패에게 모욕을 주고 되갚음을 한 것이다. 한신의 대단하면서도 뒤끝있는 성격이 나오는 대목이다.



#6


후배에게 한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후배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씩 웃었다.


“대단한 사람이군요. 대장군 한신. 마음의 위안이 됩니다.”



사마천은 한신의 과하지욕 고사를 통해,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면 작은 치욕을 거뜬히 이겨내라는, 그런 일로 심장에 스크래치 내지 말라는 쿨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사마천은 한신의 과하지욕 고사를 통해,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면 작은 치욕을 거뜬히 이겨내라는, 그런 일로 심장에 스크래치 내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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