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변호사 Jun 28. 2023

안 한 건가, 못 한 건가, 중지미수

Life in Law (2) 안 한 건가, 못 한 건가, 중지미수    

 

#1

김길호는 어느 공장에 불을 내기 위해 들어갔다. 막상 불을 지르니 불길이 너무 겁나게 치솟아 두려움을 느껴 얼른 물을 뿌려 불을 껐다. 김길호는 곧 달려온 경비원에 의해 붙잡혔다. 김길호의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김길호)는 중간에 스스로 불을 껐기 때문에 가벼운 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피고인이 중간에 불을 끈 것은 불길이 겁나게 치솟아서 두려워서 그런 것이므로 가벼운 형을 선고할 필요가 없다고 맞섰다.     


#2

이런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형법 규정을 보자.     


형법 제25조(미수범)

범죄의 실행에 착수하여 행위를 종료하지 못하였거나 결과가 발생하지 아니한 때에는 미수범으로 처벌한다. 미수범의 형은 기수범보다 감경할 수 있다.  

   

형법 제26조 (중지범)

범인이 자의(自意)로 실행에 착수한 행위를 중지하거나 그 행위로 인한 결과의 발생을 방지한 때에는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     


#3

범죄를 중간에 중단시킨 경우를 ‘미수범’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미수범(형법 제25조)에 대해서는 기수범(범죄를 완성한 자)보다 형을 감경할 수 있다(즉, 감경하고 안하고는 판사 마음이다). 하지만 ‘자의로’ 범죄 진행을 중지한 자에 대해서는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해야 한다(형법 제26조). 이건 반드시 그리해야 한다.     

형법 책에 보면 중지범에 대해서 이렇게 형을 감면해주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 중에 ‘황금의 다리 이론’이 있다. 즉, 범죄를 일단 시작했지만 스스로 마음을 바꿔먹고 이를 중단시킨 행위는 마치 ‘황금의 다리’를 건너온 것이라고 보아 죄를 감해준다는 건데, 예전에 배울 때 참 낭만적인 설명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4

일반적인 미수범과 중지범을 가르는 기준은, 범죄를 중단하는 데에 ‘자의성(自意性)’이 있냐 여부다. 자의성이라... 본인의 자발적인 의도에 의해서라는 건데. 이게 상당히 애매하다. 

자의성을 판단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프랑크의 공식’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자의성의 판단기준은 ‘할 수 있으나 원하지 않는 것’을 자의성이라 본단다.     

어디까지를 자발적인 의도라 볼 것인가. 대법원 판례들을 보면 다소 헷갈린다.     


#5

다른 사람의 금품을 절취하려고 했다가, 그 순간 어젯밤 꿈이 생각났고 그 꿈이 나빠서 다음으로 범행을 미루려고 중지한 경우는? 이건 자의성이 있다고 봤다.     

피해자를 칼로 여러 번 찔렀으나 피해자의 가슴 부위에서 많은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겁을 먹고 그만 둔 경우는? 이건 자의성이 없다고 봤다.      

범죄자가 다음에 보다 더 유리한 상황에서 범죄를 실행하기 위해 범죄를 중지한 때는? 이 경우는 자의성이 있다고 봤다.     

범죄자가 장롱 안의 옷가지에 불을 놓아 건물을 태워버리려 했으니 불길이 치솟는 것을 보고 겁이 나서 물을 부어 불을 끈 경우에는? 이 경우는 자의성이 없다고 봤다.     

성범죄를 저지르려는 범죄자에게 피해자가 ‘다음에 만나 관계를 갖자’라고 해서 범행을 중지한 경우? 이 경우는 자의성이 있다고 봤다. 우리법상 중지범은 윤리적 정당성은 따지지 않기 때문이란다.     


#6

처음 사례로 돌아가서, 우리 대법원은 김길호씨 사안에 대해서 “치솟는 불길에 놀라거나 자신의 신체안전에 대한 위해 또는 범행 발각시의 처벌 등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일반 사회통념상 범죄를 완수함에 장애가 되는 사정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이를 자의에 의한 중지미수라고는 볼 수 없다.”라 보았다(대법 99.4.13. 99도640).     


#7

이 세상에 완벽한 자의가 있을까.

타의와 자의가 결부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과연 어느 정도 비율로 mix된 것을 자의로 볼 것인지는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자의성.

이런 것들이 불확정 개념이다. 이 불확정 개념을 판단하는 것이 판사의 역할이다. 이 녀석(불확정 개념) 때문에 판결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나뉘는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말하지 않을 권리, 묵비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