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1
유튜브에서 우연히 황소개구리가 다양한 것들을 집어 삼키는 장면을 봤다. 곤충이나 작은 물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지네를 비롯하여 몸집이 지 얼굴만한 것들을 그냥 우걱우걱 삼키고는 커~억 하고 트림을 하더라. 정말 호러블...
▶ 장면 2
맛집이라고 소문이 난 집에 몇 번 갔는데, 갈 때마라 긴 줄이. 그러다 주말에 한번 갔는데, 앗싸, 대기자가 없구나. 근데 ‘재료소진입니다. 다음에 오세요~’라고. 헐...
#1
“아빤 변호사 생활이 몇 년째인데, 아직도 판결선고날만 되면 그렇게 떨어?”
둘째가 내게 하는 말. 바깥에서야 안그런척 하지만 집에서는 적나라한 모습을 다 보이니.
소송은 이기든 지든 결과가 나온다. 선고날 선고 들으러 간 직원이 연락올 때까지는 초긴장 상태. 이기면 정말 다행. 지면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다.
의뢰인중에도 “이기면 당연히 이길 사건 이긴 거고, 지면 변호사가 잘못해서 졌디”는 식으로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 뭐. 변호사의 숙명이라 생각한다.
#2
“스트레스가 제일 나빠요. 스트레스 안 받도록 하세요.”
정말 아파서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샘의 말씀. 속으로 ‘허. 스트레스 안 받고 우째 삽니꺼?’.
쉰 넘어가면서 몸 여기저기에 고장이 나는 것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가 원인인 듯 했다.
#3
원래 사람은 자기 분량의 스트레스가 있으리라. 누군가는 그랬다. 스트레스도 총량(더 정확히 말하면 감당해 낼 수 있는 스트레스의 총량)이 사람마다 비슷하게 정해져 있다고. 따라서 그 총량을 넘어서버리면 번 아웃된다는...
그런데 변호사라는 직업은 돈 받고 남의 분쟁을 해결하는 직업이니 쉽게 말해면 남의 스트레스도 일부 받아와서 해소하는 직업이다. 남의 일을 돈받고 처리하는데 어찌 신경이 안쓰이랴.
#4
젊을 때는 황소개구리 같았다. 대형로펌에서 한창 일할 때 내가 갖고 있던 소송사건수는 60-70건이었다. 그 정도의 사건이 동시에 돌아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법률적인 질문을 하면 ‘내가 마치 수퍼히어로가 되어 그것도 챙겨봐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으로 열심히 답변하고 그랬다.(마치 의사샘이 휴가떠나러 비행기 탔는데, 갑자기 기내에서 환자가 발생하면 본능적으로 치료를 하는 그런 느낌?)
#5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지치더라. 오후에는 좀 누워서 쉬어야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사건의 승패에 대한 스트레스는 도저히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증가되는 기분.
그러다 몸에 탈이 난거지...
#6
그래서 올해부터는 방침을 바꿨다.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소송사건의 한도를 정했다. 그리고 그 숫자가 넘어가면 재료소진되어 더 이상 음식을 못판다는 식당의 안내문 비스무리한 설명을 하고 사건을 돌려 보낸다.
물론 후배 변호사들을 시켜서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의뢰인들은 날 보고 사건을 맡기기 때문에 어차피 내가 다 신경써야 하는데. 난 그 동안 너무 황소개구리처럼 살았기에 이젠 몸을 사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승패에 따른 스트레스가 적은, 전통적인 자문사건(계약서 검토부터 M&A 협상 등)을 늘이고 있다.
#7
내 몸에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안그러면 쓰러질 것 같기에.
소송을 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결과에는 담담해지는 거. 그건 여전히 잘 안 될거라 본다. 항상 재료가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고, 딱 정해진 그릇 수의 냉면만 팔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요즘 그러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