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떼기(?)에 물을 주면서]
#1
아버지가 기르시던 화초가 꽤 있었는데 아버지가 몸이 많이 쇠약해지시면서 직년에 그 화초들을 받아왔다. 둘째 딸이 이어 받아서 화초들을 기르겠다고 한 것이다.
난 사실 이런 분야에 관심도 취미도 전혀 없다. 그냥 ‘거실에 풀떼기들이 있네?’ 정도의 인식을 하고 있었다.
나를 빼고 온 집안 식구들이 외국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20일 정도), 둘째는 떠나면서 화초들에게 물을 줘야 한다고 신신 당부했다. 그냥 1주일에 2번 정도만 주면 된다고 했었다. 나는 무신경하게 '알겠다'고 답했다.
#2
가족들이 여행 떠난 지 7일차.
오늘 둘째가 카톡으로 화초들에게 물을 줬는지 확인을 했다.
'아차차!!! 까먹고 있었네.'
나는 회사에서 퇴근 후 바로 물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집에 와서, 물뿌리개에 물을 채운 다음 그 풀떼기들에게 다가갔다.
헐... 이번 주가 얼마나 더웠나?.
난 덥다고 에어컨 켜고, 얼음 탄 음료수 벌컥벌컥 마셨는데, 풀떼기들은 많이 말라 있었다.
얼마나 그 동안 목이 말랐을까?
#3
물을 주니 물이 각 화분의 흙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정성을 담아 쫙 물을 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뭐 거창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물만 먹고 살아간단 말인가?
이것만으로 꽃을 피운다고?’
순간 그 풀떼기들이 너무 대견하게 여겨졌다. 뭐랄까. 군자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4
화초를 키우시는 분들이, 막상 화초가 죽어나가면 그리 마음 아파 한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솔직히 잘 이해가 안 갔다. 애완동물이라면 그래도 이해가 갈 만 한데, 아무 움직임도 없는 식물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허허. 참 이상하군... 그랬었는데.
막상 물을 주고 보니, 이 풀떼기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내일 아침에 얘들의 상황이 보고 싶다. 어찌 되었는지.
정말 미안하데이.. 말 못하는 너희들이 얼마나 목말랐겠니.
근데...이런 감정이 드는 것도... 나이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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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숙, 박영만 및 외 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