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떼기를 다시 보다]
#1
최근 딸래미 부탁으로 집에 있는 풀떼기에 물을 주면서 문득 든 생각.
화초들은 그냥 이렇게 1주일에 1번만 물을 줘도 살아낸단 말인가?
식물을 우습게 알았는데, 동물보다 더 강인한 생존력 아닌가?
동물들은 며칠만 굶어도 심각한 상황에 처하는데.
그리고 식물은 움직이지도 못하지 않는가?
어라? 갑자기 화초들이 대단하게 보이기 시작.
#2
그래서 생존력 관점에서 식물이 동물보다 강한 이유를 찾아보니 대략 아래와 같은 결론이 나왔다.
첫째, 기본 세포구조 면에서 봤을 때, 식물은 단단한 구조인 세포벽을 갖고 있는 반면 동물은 유연하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세포막을 가졌다. {세포벽 ≫ 세포막}
둘째, 식물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태양, 산소,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낸다. 동물은 어떻게든 먹잇감을 찾아내야 한다.
셋째, 식물의 경우 겨울에는 휴면에 들어갔다가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살아난다. 물론 동물의 경우에도 일부 동물은 겨울잠을 자기도 한다. 하지만 식물이 훨씬 광범위하게 이러한 휴면 작용을 갖고 있다.
넷째, 번식방식의 경우 식물은 씨앗, 포자 및 기타 방법을 통해 번식하여 자손을 퍼뜨리는데, 동물은 번식을 위해 특정한 조건이나 파트너가 필요하다.
다섯째, 재생과 회복력 측면에서 극명한 차이가 있다. 식물은 가지를 부러뜨리면 새 가지가 돋아난다. 식물의 재생능력은 놀랍니다. 동물의 경우 읽어버린 팔다리나 장기를 재생시킬 수는 없다.
#3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동물과 식물은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데, 그 중 한 부류(동물)는 이동성을 확보했지만, 나머지 한 부류(식물)는 정해진 자리에 고정되어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동성을 빼앗긴 식물은 자신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위와 같은 모습을 진화하며 적응력을 높여갔던 것이다.
#4
문득 동, 식물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인생살이와도 닮은 듯 했다.
① 누구나 살아가면서 동물적 환경과 식물적 환경에 놓일 수 있다.
② 식물적 환경이란, 내가 꼼짝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③ 그때는 단단한 심리적 외벽(세포벽)을 갖추고, 가장 최소한의 수입으로 버텨야 하는 생존력을 가져야 하며(광합성), 일부러 사람들과의 만남에 거리를 두면서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하다(휴면). 그 과정에서 부러진 가지를 재생하는 회복력을 길러야 한다.
④ 이런 과정을 통해 식물적 환경을 돌파하고 나면 동물적 환경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동물적 환경에 걸맞는 행동양식을 갖춰야 할 것이다.
#5
그동안 식물을 너무 띄엄띄엄 봤던 것 같다.
갑자기 화초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위 #4에서 언급한 꼭지들을 중심으로 에세이 몇 편 써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