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우성 변호사 Oct 08. 2023

어깨뽕 빼거레이(2탄)


[Inside Law Firm] 어깨뽕(?) 빼거레이.(2탄)


로펌에서 일하다보면 상대하는 기업 규모가 크다보니 나도 덩달아 커진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내가 다니던 로펌의 송무파트 책임자였던 K변호사의 이야기가 기억난다.


‘변호사들이 일반 직장인들보다 급여 수준이 높으니 로펌이라는 조직이 꽤 잘 나가 보이지? 근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


‘매출 100억이 로펌 업계에서는 하나의 분기점으로 통하는 거 알지? 고위공직자들이 퇴직하고 나올 때 취업제한으로 걸어두는 기준이 100억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로펌이잖아? 즉 년 100억 정도 매출이면 규모 있게 보는거야.’


‘근데 년 매출 100억은 절대 큰 규모 아냐. KOSPI나 KOSDAQ기준으로 보면 완전 구멍가게 수준도 안 돼. 아예 상장도 못할 수준일걸. 우리가 알고 있는 아무 기업이나 한번 찾아봐. 보통 연 매출이 조단위, 적어도 몇 천억 단위야. 규모로 봤을 때 로펌의 규모는 자본시장에서 명함도 못 내밀어.’


‘일반 기업들은 자산이라도 많잖아. 로펌은 자산이라고 해봐야 변호사들이지. 그런데 그 변호사들이 평생 한 로펌에 있나? 조건 안 맞으면 딴 곳으로 후루룩 떠나버리는 일이 다반사지. 그리고 로펌 수입의 대부분은 인건비로 다 지출돼. 로펌은 기업처럼 유보금이 많지도 않아. 그렇다고 자본시장에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좀 과장되게 말하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바닥이 이 바닥이야. 안정적이고 탄탄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아. 의뢰인들이 계속 우리만 찾으라는 법 없고.’


사실 K변호사는, 당시 로펌의 집행부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월급 올려주세요! 복지 더 챙겨주세요!’라고 말하는 주니어 변호사들에게 실상을 알리려는 목적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말은 곱씹을수록 옳은 말이긴 하다.


주식회사가 아니기에 자본을 끌어올 수도 없고, 수익의 대부분은 인건비로 다 나가기에 수익률이 높지도 않고, 고정자산을 많이 보유한 것도 아니고, 유보금을 많이 남겨두지도 못하고. 그래서 로펌 중 화려한 겉면(대리석 장식)과는 달리 속빈 강정인 경우가 꽤 있다. 이는 내부 사람들만 알고 있는 정보.


특히 대형 로펌을 나와서 나처럼 작은 부띠크 펌을 운영하다보면 K선배의 말이 더 실감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꺠뽕 빼거레이 (1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