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로펌
확실히 “주기(週期)”라는 게 모양이다. 요즘은 참 일에 집중이 안 된다. 좀 지친 듯한 느낌. 맥 없이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많다.
법원에 제출할 서면을 작성하는 데도 예전보다 2-3배의 시간이 걸리고, 막상 완성이 되어도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지칠 때가 된건가....”
보통 로펌에 입사한 후 5-6년이 지나면 미국 유학(1년 반 또는 2년)을 다녀 온다. 유학이라고 해서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재충전 및 휴식의 시간으로 유학기간을 활용하곤 한다. 나는 1997년에 법무법인 태평양에 입사했으니 2001년 정도에는 유학을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난 2000년경부터 사업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 잡혀 인터넷 법률사이트인 로앤비(
www.lawnb.com
)를 만드는 일에 착수하였고, 태평양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별도의 자회사를 설립해서 3년간 사업을 했었다. 로앤비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다음 기회에 자세하게 언급하기로 하고...
변호사는 사업가들에게 조언만 해 주는 입장이며, 최종 결정은 이러한 조언을 받은 사업가들이 하는 것이다. 그 조언에 따라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이는 사업가들의 몫이다. 그래서 누가 그랬던가. 변호사나 컨설턴트가 사업을 시작하면 망하기 쉽다고. 왜냐하면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일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나 또한 ‘변호사가 시작한 사업은 역시나 끝이 안좋더라’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독한 마음 먹고 사업에 임했다. 물론 그 당시 변호사보다는 사업가가 훨씬 더 멋있어 보였던 측면도 내가 사업에 뛰어들게 된 배경이 되었다.
법원에서 ‘정보화 법관’으로 이름을 날리시던 L판사님을 (주)로앤비의 대표이사로 영입하고 나는 3년간 (주)로앤비에서 마케팅, 기획이사로 활동했었다.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투자회사를 방문, 사업설명을 하면서 투자를 호소하던 일, 로앤비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기업체를 돌아 다니면서 세일즈를 시도했으나 거절당하고 낙담하던 일, 직원들과 기획상품을 개발했는데 그 상품이 시장에서 반응이 좋아서 큰 매출을 올릴 수 있었기에 서로 부둥켜 안고 기뻐하던 일 등이 떠오른다. 힘든 과정을 거쳐 이제 로앤비는 우리 나라의 왠만한 관공서와 대기업체, 변호사들이 사용하게 되었으며, 국내에선 가장 대표적인 법률 사이트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나는 2002년 12월에 다시 법무법인 태평양에 돌아왔고, 요즘은 로앤비에서 진행하는 기업체 법무 강의에 강사로만 출강하고 있는 상황이다.
변호사로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험을 해 본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차피 나는 business-lawyer의 길을 갈 것인데, 그렇다면 business를 하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가를 직접 몸으로 체함하는 것만큼 절실하게 필요한 일도 없을 것이다. 결국 로앤비에서의 3년의 경험은 내가 기업전문 변호사로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밑거름이 된 것이라 자부한다. 하지만 로앤비에서 세일즈 하느라 정신없이 살다가 다시 태평양에 복귀한 뒤 2년 동안 일에 치여 살아오다 보니 요즘은 지친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그렇다고 막연히 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무언가 Refresh가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 그래서 일을 좀 줄이고, 여유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 본다.
사실 시간의 여유보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한번씩 대중가수들이 ‘더 이상 보여드릴 게 없습니다. 6개월 정도 재충전한 뒤 새앨범을 들고 다시 여러분들 앞에 나서겠습니다’라는 멘트를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그 동안 내가 잊고 있던 진정으로 소중한 일이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야겠다. 항상 “급한 일”에 쫓겨서 정작 “중요한 일”을 뒤로 하지 않았나 하는 불안감이 갑자기 밀려든다.
일단 그 동안 보고 싶었던 책들을 보고 싶다. 지난 몇 년간 즐겨봤던 책들은 마케팅, 경영, 자기관리, 협상론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요즘은 인생을 달관하신 분들이 저술하신 수필집에 손이 간다. 수필집의 글들은 왠지 밋밋해서 전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담담한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곤 한다.
또한 역사에 관련된 서적도 삶의 여유와 지혜를 주는 것 같았다.
‘재충전’. ‘방향성의 재확인’.
요즘 나의 화두(話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