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1인분 변호사로 인정 받다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 (12) 1인분 변호사로 인정 받다


#1


선배 이형석 변호사로부터 지적을 받는 일은 그 후에도 많았다. 나는 다른 선배들 사건보다 이 변호사 사건에서 실수가 없도록 하기 위해 더 노력했다. 뭔가 이 잘못 꼬인 실타래를 풀고 싶은 마음이었다.


덕분에 조금씩 빨간펜 수정표 개수가 줄어들어갔다. 어떤 서면은 빨간펜 하나도 없이 ‘ok!’라는 기분 좋은 사인이 적혀 있었다. 세상에. 내가 ok를 받다니.



#2


어느 날, 우리 로펌의 중요 고객인 현대건설에서 담당자 2명이 회의를 하러 왔다. 당시 진행 중이던 소가 200억 규모의 소송 관련 대책회의였다. 이 변호사가 책임 변호사인 사건이었고, 신입인 나 외에 3년차 선배(정 변호사)도 같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이 변호사, 정 변호사와 같이 회의에 들어갔다.



#3


회의 도중 의뢰인이 이번 준비서면에서 새롭게 주장한 논리(민법 제481조 변제자 대위)를 칭찬했다.


“와, 변호사님. 이번 서면에 나온 그 논리. 그거 저희들도 미처 생각 못했던 건데. 귀신같이 집어 내셨더군요. 이걸로 소송에서 승기를 잡겠는걸요?”



사실 그 동안 너무 박스 안에서 사건을 보고 있었는데, 좀 다른 시각에서 사건에 접근하다보니 발견하게 된 논리였다. 내 준비서면 초안을 보고 이형석 변호사가 논문 2개를 챙겨줬는데, 내가 그 논문을 깊이 파다보니 이 논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4


“아, 그거, 제가 한 게 아니라 여기 조 변호사가 발견한 겁니다.”


“아, 그래요? 조 변호사님은 이제 신입인 걸로 아는데, 대단하시네요.”


“네, 조 변호사가 상당히 실력이 좋습니다.”


이 변호사는 내 어깨를 치면서 나를 칭찬했다.



뭐라고? 내 실력이 좋다고?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 전까지는 의뢰인들이 이 변호사와 정 변호사와만 눈을 맞추고 있다가 그 말 이후부터 내게 집중했다.



#5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이 변호사가 나를 자기 방으로 불렀다.


“조 변호사. 잘했어.”


“아니...뭐...그거 다 이 변호사님이 주신 논문을 보고 한 거라.”


“솔직히 나도 논문 속에 있는 내용 중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었어. 논문에 인용된 판례를 그런 식으로 반대해석을 통해 논리를 만든 건 잘한 일이야.”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내가 밉지 않았나?”


“아뇨, 밉기는요... 제가 뭐” 미운 게 아니고 한판 붙었습니다. 꿈 속에서....


“내가 이것 저것 고치고 지적한 거, 그건 조변을 키워볼려고 그런 거야. 그냥 내가 후다닥 고쳐버리면 발전이 없어. 내가 선배들에게 그렇게 배웠거든. 힘들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되더라구. 나도 그땐 몰랐지.”


흠... 그렇게 깊은 뜻이.



“이제야 제대로 1인분 변호사가 된 것 같아. 축하해, 그리고 환영하네. 웰컴 투 태평양이야!”



입사한 지 근 10개월 만에 제대로 동료로 인정 받았다. 이제야 실질적인 입사다.


내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 변호사님, 잘 지내십니까. 이제 뭐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한번 인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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