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14) 사이버 고시촌장, 조우성
“변호사님, 한국경제 윤 기자님이라고 인터뷰 요청 전화인데요?”
비서 화정씨가 내게 인터폰을 했다. 한국경제 기자? 나 같은 신입변호사에게 무슨 인터뷰?
1997년 6월 초, 태평양의 신입변호사로서 한창 좌충우돌 하고 있을 때였다. 전화를 받았다.
“조우성 변호사님? 네, 안녕하세요. 에프원 건으로 인터뷰 좀 하려고 하는데요...”
아... 에프원...
앞서 밝혔지만 나는 태학관 이관장님의 권유로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직후 학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수강생들의 칭찬이라는 강의뽕(?)을 맞고 점점 업 되어 열심히 강의를 나갔다. 1992~1993년 사법연수원생 시절에도, 1994년~1996년 군법무관 시절에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신림동에 와서 여러 학원에서 다양한 과목(헌법, 행정법, 형법, 상법, 국제사법)의 강의를 했다. 특히 사법시험을 앞둔 겨울철에 특강을 자주했다. 전업 강사들과는 또 다른, 합격생으로서의 노하우를 전해주는 데 집중했다. 초창기에 형법 강사로 엄청 잘나가던 한문철 검사님은 현직이 바빠서 강의를 중단했고, 예전에 인사를 나눴던 신호진쌤은 부동의 형법 1타 강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나 역시 어느 정도 매니아층을 형성하는 강사였다.
나는 강의를 한판 ‘굿’이라 표현하곤 했다. 일단 강단에 서서 마이크를 잡으면 접신한 무당처럼 신나게 판을 벌인다. 강의가 끝나면 온 몸에 땀이 흠뻑.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전수하겠심다. 라는 심정으로 강의를 했다. 종강을 할 땐 멋진 시 한 편을 출력해서 나눠주고 합격을 기원했다. 꼭 종강파티를 했다. 근처 호프집을 잡고 내가 맥주를 샀다. 사실 강사료 받아서 거의 반은 자료준비값, 술값에 썼다. 하지만 수강생들과 눈을 마주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강의를 하다보니 체계화된 강의자료가 필요했다. 나는 1993년경 내 방식으로 과목별 노트를 만들었다. 개념노트도 만들고 학설노트도 만들었다. 당시 고시전문 출판사(정명사) 권 사장님과 논의 끝에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에프원’(F1). F1은 컴퓨터의 도움말 키보드이다. 나는 내가 정리하는 노트가 수험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 내 이름도 도울 우(祐) 정성 성(誠), ‘남들을 정성스레 도우며 살아라’라는 의미였기에 내 이름과도 뜻이 통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수험서 ‘F1 시리즈‘였다. 책을 만들다 보니 나는 Font에 관심이 많아졌고, 어떻게 편집하는 것이 가독성이 좋을지도 고민했다.
그래서 그 당시 신림동에서 조우성은 F1 이라는 브랜드로 통했다. 이렇게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을 가깝게 만나다 보니 그들의 고민, 특히 지방학생들이 서울까지 와서 숙식을 하며 강의를 들어야 하는 어려움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뭔가 타개책이 필요하지 않은가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PC통신 시대에 “에프원 동호회”라는 걸 만들게 되었다.
에프원 동호회를 만들게 된 구체적인 경위는 다음에 소개하고, 우선은 당시 한국경제에 실렸던 기사 전문을 인용한다.
"정이 넘치는 사이버 고시촌 건설" 조우성(29) 변호사(태평양법률 사무소)가 PC통신 하이텔에 사법 행정 외무 등 국가고시준비생 동호회인 "F1"을 발족시킨 목적이다.
F1은 국가고시 준비생들이 각자 갖고 있는 경험과 정보를 십시일반격으로 서로 제공, 보다 효율적으로 고시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 동호인모임. 이 동호회는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조변호사가 자신이 고시를 준비하던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이텔에 각종 고시관련 정보를 올린 것이 모태가 됐다.
여기에 뜻이 맞은 몇명의 고시준비생들이 참여, 올해초 소모임으로 출발한뒤 4개월만에 정식동호회로 발족할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현재 회원수는 6백70여명에 이르고 연령층도 2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까지 다양하게 분포돼 있다. 이 동호회는 특히 지방에서 수험준비를 하거나 고시와 관련이 없는 비전공 수험생들이 대거 참여한 이른바 "고시 아웃사이더"들을 위한 정보의 장이 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92년 숙부 친구분이 운영하는 고시학원에서 행정법 강의를 잠시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고시 아웃사이더들이 "고시촌의 메카"로 불리는 신림동에서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는 강 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느꼈지요"
그러나 이 곳에서의 생활은 고시원비를 비롯 비용이 월평균 60만~70만원이 들어가는 등 보통 큰 부담이 아니라고 한다.
조변호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통신에 여러가지 정보를 게시하면 아웃사이더들이 굳이 이곳에 올 필요없이 각자의 위치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작업을 처음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예상을 넘어선 반응이 생겼고 자신이 발을 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조변호사는 이 동호회가 단지 고시정보의 집산지로서 역할만 한다면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 매월 1회정도 회원들이 실제 만남의 시간을 가져 유명강사의 강의도 듣고 식사와 간단한 술도 곁들이고 있다고 들려줬다. < 윤진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6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