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얼떨결에 IP팀으로 지원하다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17) 얼떨결에 IP팀으로 지원하다


#1


1997년 당시 태평양에서는 신입변호사가 들어오면 절반은 일반 송무, 절반은 일반 자문 파트에 배속을 시켜서 일을 배우게 한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다음에는 자기가 희망하는 곳으로 지원을 한다. 물론 그렇게 지원을 한 다음에 나중에 부서를 또 바꿀 수는 있지만 신중하게 지원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나는 1년 동안 일반 송무팀에서 트레이닝을 한 후 2년차때 어디로 지원할지 고민되었다. 몇 개부서를 놓고 저울질을 했다. 그런데 당시 세계적으로, 그리고 우리나라도 닷컴 열풍이 불어닥칠 때였다.


닷컴 열풍이라...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현상으로, 특히 인터넷과 관련된 기업들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투자를 받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는 인터넷 기술의 발전과 함께 많은 스타트업들이 등장했다. 이들 기업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와 제품을 개발했고, 많은 투자자들이 이러한 기업들에 큰 기대를 걸고 투자를 했다. 이로 인해 인터넷 관련 기업들의 주식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고, 이는 그 후에 '닷컴 버블'이라고 불리는 시장의 과열 현상을 만들기도 했다. 어떻든 회사 이름에 점 하나 찍으면(이름을 닷컴이라고 붙이면) 떡상을 하던 이상한 시기였다.


#3

닷컴.jpg


나 역시 물 들어 올 때 노저어 보자는 심정으로 IT쪽을 지원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보다 IT쪽에 경험도 있는 편이었고, 나름 얼리 어댑터였기에...(그 자부심이 2년 후 밀레니엄 버그를 막아내겠다고 설치게 한 동력이 되긴 하였지만...).


그럼 IT쪽 대빵인 오양호 변호사님을 만나 뵙고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4


“IT 파트에 지원하고 싶습니다!”


“오, 그래?”


오 변호사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리고는 흥미롭게 나를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남들은 다 생소하다고 그러는 분야인데... 하기야 조변은 이쪽에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지? 나도 들었어.”


나는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강한 의욕을 뿜어냈다.



“근데 말야.... 조 변호사.”


“네?”



“IT를 하려면 IP를 알아야 돼.”



“IP...요?”


“응, IP. 지적재산권 말야. IT라는게 사실 IP의 지류(支流)거든. IP를 제대로 알면 IT는 그냥 거저 먹는 거지. 암...”



그런가? IP라? 그건 생각도 못했는데.


“근데 마침 잘 됐다. IP쪽에 주니어가 비어있거든.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네? 여기에 자네가 딱 들어가면 안성맞춤일 거 같은데. 어때?”



IT를 하려면 IP를 알아야 한다니. 그게 맞다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 변호사께서 활짝 웃으셨다. 그리고 내 어깨를 강하게 잡으셨다.



“생각 잘 했어!!! 거기 칩이 황보영 변호사라고, 대단한 실력자야. 거기서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거야.”



#5



다음날 민사 송무팀 선배 이형석 변호사가 나를 불렀다.


“너, IP팀으로 가기로 했다면서?”


“아. 네...”


“IT로 간다고 했었잖아?”


“아, IT를 하려면 IP를 먼저 해야 한다고 해서...”


“누가?”



“아... 오양호 변호사님이...”



그러자 순간 이형석 변호사가 멈칫했다.



“아... 오 변호사님이 그러.,..셨어?... 응. 일이 그리 된 거구나...응..,..”


뭐지? 저 껄적지근함은?



#6


부서가 바뀌면 비서도 바뀌게 된다. 화정씨에게 IP팀으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화정씨의 대답이 놀라웠다.



“왜요? 거기를 왜요?”



왜라니. 거 참. 다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런 거지.



“거기 이형석 변호사님이 계시다가 도망쳐 나온 곳인데...”



뭐라고? 이형석 변호사가 도망쳐 나온 데라고?


“1년 하시다가 못 버티시고 이형석 변호사님이 작년에 도망치셔서 이쪽 민사 송무팀으로 오신 거잖아요... 모르셨구나.”


왜? 뭐땜에 도망을?



“거기 황보영 변호사님이라고. 그 분 밑에서 주니어들이 잘 못버텨요. 얼마 전에도 1년 동안 일하던 주니어가 금융쪽으로 도망가버리고 지금은 아무도 없대요.”



아하.. 그래서 오양호 변호사께서 ‘공교롭게도’ 자리가 비어있다고 그러신 거야? 그런 거야?


그래서 이형석 변호사도 그런 썩소를 날린 거야? 그런 거야?


나 이제 어떡하니?



이렇듯 나의 IP팀 배속은 정말 얼떨결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황보영 변호사님과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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