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27) 국제특허분쟁(3)
#9
나는 byh에게 부탁을 해서 내가 맡고 있던 다른 사건들은 다른 주니어들에게 재배당하고 니콘 사건에 올인했다. 그럴만큼 어렵고 중요한 사건이었다. 일본측과 회의 진행은 더 자주 해야 했고, 회의 준비와 재판 준비로 내 몸과 마음은 피폐해지고 있었다.
그런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날 밤 11시가 넘어서 메일 알람이 떴다. 니콘이다.
‘아...얘들은 퇴근도 안하나. 맨날 이 시간에 메일을 보내고 말야...“
또 무슨 지시인가 싶어서 불안한 마음에 메일 내용을 읽어보다가 나는 놀라움에 입을 틀어막았다. 앗!!!!! 이게 뭐야?
메일 내용은 이랬다.
1) 다음 주에 진행할 재판을 재판부에 요청해서 1달 뒤로 연기시켜 달라.
2) 현재 니콘과 ASML은 이 사건 분쟁을 합의로 끝내기 위해 비밀협상 중이다.
3) 그 협상이 잘 마무리되면 전 세계 소송은 취하될 것이다.
4)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나는 ‘취하’라는 글자에 눈이 꽂혔다. 재판을 그만두고 화해를 한다는 건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제발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나는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10
byh가 비하인드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특허 사건에서 1, 2등 업체간에 특허 싸움을 할 때 서로 화해로 끝나는 경우들도 많아. 왜냐하면, 특허사건에서 2등은 1등의 특허가 무효라고 주장하잖아? 어떻게든 2등 업체는 1등의 특허를 죽이려고 노력하지. 그렇게 1, 2등이 싸우고 있을 때 3, 4, 5등이 시장에서 쑥쑥 성장하거든. 2등이 고생고생해서 1등 특허 죽여버리면 그 혜택은 3, 4, 5등이 보게 된다구. 이제 특허가 사라졌으니 3, 4, 5등 업체는 자유롭게 제품을 만들 수 있잖아. 그래서 이럴 때 1, 2등이 서로 합의해서 이 특허를 굳이 죽이지 않고 살려두고, 다만 1등은 2등에게 특허 사용을 허락해주고 그 특허로 3, 4, 5등을 같이 조지는 그런 전략을 쓰거든. 지금 ASML과 니콘이 딱 그런 케이스야.”
아... 그런 거구나.
“조변, 종교 있어?”
“아뇨...특별히 종교는 아직...”
“그럼 다 빌어,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에게. 얘들 서로 원만히 합의하게 해 달라고.”
아... 그래. 이건 정말 내 온 마음을 바쳐 기도하고 기원할 일이다.
나는 정말 그때부터 정갈한 마음으로 수시로 두 업체간의 성공적인 합의를 간절히 기원했다.
#11
어느 날 저녁 11시. 니콘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1) ASML과 원만히 합의했다. 며칠 후 언론보도가 될 것이다.
2) ASML과의 소송은 전세계적으로 전부 취하하고, ASML과 니콘은 상호 보유한 특허를 크로스 라이센싱을 주는 방법으로 협업하기로 했다.
3) 그 동안 수고 많았다. 오늘분까지 전부 비용을 청구해주면 바로 입금해 주겠다.
나는 이 메일을 받고서 벽 잡고 울었다. 눈물이 흘렀다. 기쁨의 눈물이라기 보다는 안도의 눈물이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