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변호사, 태평양 로펌가다>(31) 갑돌이와 갑순이-1편
#1
IP팀에서 근무하면서 다양한 상표권사건을 진행했었다. 그 중에 기억나는 사건 하나.
1998년 봄, byh가 내게 한 사건을 맡겼다.
“조변, 이거 좀 묘~~한 사건이네. 나름 싸울만한 부분이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내가 볼 땐 상당히 묘~~해. 잘 한번 진행해 보자.”
사건 내용은 이랬다.
국내 의류 업체 A사는 1994년 7월에 ‘D&G’라는 상표를 출원했고, 1995년 12월에 등록이 되었다. A사는 자신들이 제조한 의류에 위 상표를 부착해서 열심히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8년에 이태리 회사 “돌체 앤 가바나”가 이 점을 문제 삼으며, A사를 상대로 제조판매 금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2
돌체 앤 가바나 측의 주장은, ‘D&G’는 자기 회사의 서브 브랜드로서 세계적인 명성이 높은 상표인데, 이 상표가 아직 한국에서 자신들의 이름으로 등록되지 않은 상황에서 A사가 먼저 몰래 이 상표를 출원하고 등록받은 것이므로. 이 상표는 등록무효를 받아야 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 상표를 부착하여 의류를 제조, 판매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므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한 A사의 주장은, ‘돌체 앤 가바나’나 ‘D&G’는 1998년을 기준으로 하면 유명하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자신들이 ‘D&G’상표를 국내에서 출원한 1994년을 기준으로 하면 전혀 유명하지 않았고, 자신들은 D&G라는 상표의 존재도 모른 채 알파벳 두 글자를 조합해서 이 상표를 출원한 것이므로 모방 상표 출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3
상표권은 속지주의(屬地主義)를 따른다. 즉 해당 나라에 자기 이름으로 상표 등록이 되어 있어야만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래서 글로벌 브랜드를 지향하는 상표는 세계 여러 나라에 국제 출원(PCT)을 해두려 노력한다.
돌체 앤 가바나가 지금(1998년)은 아무리 유명해졌다 하더라도 A사가 ‘D&G’를 출원할 당시 한국에서의 인식(얼마나 유명한가)을 기준으로 판별하는 것이 맞다. 단지 자기네가 유명 브랜드라고 해서 뒤늦게 한국에 들어와서는 이미 상표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비켜!’라고 주장하는 것은 상표권의 속지주의를 뒤흔드는 일이라 판단했다.
‘지들이 명품이면 명품이지 왜 한국의 상표권 체계를 흔들려고 하냔 말이다’는 심정으로 이 사건을 잘 처리해 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 사건에서 승소하는 것은 국익에도 도움 된다는 생각도 했다.
#4
나는 A사 법무팀과 반박 자료를 만들어 돌체 앤 가바나 측의 청구에 대응해갔다. 재판은 상당히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재판의 쟁점은 ‘과연 A사가 1994년 ‘D&G’를 상표 출원할 당시 이 상표가 다른 회사(돌체 앤 가바나)의 상표인 사실을 모르고서 독립적으로 출원한 것이 맞는지 여부‘였다. A사는 당연히 그렇다고 주장했다.
입증책임의 원리상 A사의 악의(D&G가 돌체 앤 가바나측의 상표라는 사실을 알았다)를 입증할 책임은 돌체 앤 가바나 측에 있는 것이므로 A사는 별다른 반대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무난한 방어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일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5
세 번째 기일에 돌체 앤 가바나 측은 증거 자료 여럿을 새롭게 제출했다. 그 자료에 따르면, 돌체 앤 가바나가 1993년 말 프랑스 파리에서 서브 브랜드인 ‘D&G’를 패션쇼에 런칭할 당시 A사 담당 직원이 그 패션쇼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잉? 이 때 여기에 갔었다고?
더 놀라운 일은, 패션쇼 직후 A사 담당 직원이 돌체 앤 가바나 측에 편지를 보내 ‘D&G’ 브랜드의 한국 내 총판을 자신들에게 맡겨 달라는 제안을 한 사실도 있다는 것이다.
뭐지...?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