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30) 고수 열전
#1
내가 변호사 신입 시절에 하늘같이 우러러 보던 선배들이 기껏해야 30대, 나이가 많아봐야 40대 초반이었고, 변호사 경력 10년 미만이었던 분들이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 어린(?) 수준인데, 그때는 정말 대단했다.
내게 있어 태평양 로펌은 훌륭한 학교이자 수련장이었다. 같이 일하는 선배 한 명 한 명이 다 무림의 고수 같았다. 그 고수들은 자기들만의 한 칼(!)을 갖고 있었고, 후배들은 그것을 부러워했다.
#2
동기들끼리 모이면 다양한 정보를 주고 받는다.
“김인섭(ISK) 대표변호사님이 제일 총애하는 변호사가 누군지 알아? 바로 IMK(김인만 변호사)래. IMK는 완전 초창기 멤버잖아. 그래서 ISK가 직접 서면 하나 하나 다 고치면서 가르치셨대. 그래서 문장이 가장 ISK 다운 사람이 IMK라잖아.”
“응, 나도 그 이야기 들었어. 아마 우리 사무소에서 가장 많이 파기 판결을 받아낸 사람이 IMK일 걸?”
우리나라 재판은 3심제도인데, 1, 2심의 결론을 3심에서 뒤집을 때 대법원은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다. 즉 대법원에서 뒤집었다는 얘긴데 이건 진짜 어렵다. 변호사 생활 20년 해도 파기 판결 하나 받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IMK에게 부탁했어. 그동안 쓰신 서면 좀 공유해 달라고. 그거 제본해서 우리 주니어들끼리 나눠보자.” 학구적인 손 변호사가 이런 멋진 제안을 했다.
“그런데 사실 IMK(김인만 변호사) 문체도 좋지만 GCD(도건철 변호사) 문체도 참고해 볼 필요가 있어. 뭐랄까 IMK체가 아주 적확하고 간결한 편이라면, GCD는 다소 만연체지만 설득력 있게 쓰는 편이거든. 사건 별로 IMK체가 좋을 경우가 있고, 반대로 GCD체가 좋을 경우도 있어.”
나는 메모해 뒀다. 의견서에는 IMK체를, 소송서면에는 GCD체를 기본으로 익혀야겠다.
#3
“난 진짜 놀랬어. YHO(오양호 변호사)의 판세를 읽는 능력은 대단하더라. 전체 프레임을 한 번에 꿰뚫고 협상해 나가는데... 진짜 놀라워.”
“그래서, 이런 말이 있잖아. 태평양에서는 YHO로부터 매크로(거시적)를 배우고, byh(황보영)로부터 마이크로(미시적)를 배우면 다 배우는 거라고.”
허...? 그런 말도 있어? 하기야 byh의 디테일은 아무도 못 따라가지.
“난 솔직히 rbh(한이봉 변호사)의 영어 실력을 뺏어오고 싶어. 지난번 회의할 때 보니까 진짜 유창하던데? 상대방 본토 미국 변호사들이 꼼짝 못하더라. 농담까지 완벽하던데?”
“난 hdl(이후동 변호사)의 일본어가 부러워. 사실 우리나라 교역규모에서 한미간 거래 못지 않게 한일간 거래도 만만치 않거든. 영어 잘하는 변호사들은 많아. 그런데 일본어 유창하게 하는 사람은 적잖아.”
“이번에 한미에서 태평양에 합류한 KYK(김갑유 변호사) 있잖아? 그 양반은 국제 중재쪽으로 앞으로 개척하려고 팀을 꾸린다던데? 국제 중재가 유망한 분야일까?”
“그거 쉽지 않을텐데. 국제 중재는 엘리트 중에도 초엘리트가 갈 수 있을텐데. 나는 언감생심, 그냥 송무 변호사로서 만족해야겠어.”
후배들은 이렇게 선배들을 평가하고 본받으려 노력했다. 선배들에 대한 강한 respect가 존재했다. 그 시절의 선배들은 나에게는 무협지에 나오는 절정 고수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태평양이 좋았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