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갑돌이와 갑순이-2편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변호사, 태평양 로펌가다>(32) 갑돌이와 갑순이-2편


#6

A사가 초도 상담 때부터 했던 진술의 신빙성이 아무래도 미심쩍었다.

‘D&G’ 브랜드가 유럽에서 런칭된다는 것을 알고 미리 한국에서 상표권을 찜해 두려고 몰래 출원한 거 아냐? 나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이 점에 대해 A사 법무팀 직원에게 강하게 물어봐도 자기는 그 당시 회사에 없었고 그 담당자도 퇴사한 상황이라 정확히 잘 모른다고만 답변했다.

영 느낌이 안 좋았다. 재판을 진행하는 판사도 언제부턴가 우리쪽을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았다.

재판 기일에 판사가 우리 측에 석명(질문에 대해 답변하라)을 요구했다. 올 것이 왔다...

“피고측은, 왜 많고 많은 알파벳 중에 D와 G를 결합한 ‘D&G’를 선택하여 상표출원한 것인지 그 구체적인 이유를 소상히 밝히세요.”

이건 정말 나도 궁금한 점이었다. 나는 A사 측 대표이사와 통화해서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7

그리고 재판 전날 A사측으로부터 공식적인 답변이 도착했다. 나는 그 답변을 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 얼른 A사 측에 전화를 걸어서 재확인했으나 자기들은 이 답변이 사실이라고 계속 강조했다. 아...난감하다...

재판 날. 판사는 우리 사건 번호를 호명한 후 나를 그윽하게 노려보았다.


“자, 피고측 대리인. 지난번에 재판부가 석명요구한 대로 왜 하고 많은 알파벳 중에 D와 G를 결합했는지 설명해 보세요.”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오늘 따라 재판을 기다리는 변호사들이 많았다. 아...


“피고측 대리인. 왜 대답 안하십니까?”

나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네, 돌쇠와... 갑순이...”


“네? 뭐라구요?” 판사가 몸을 확 앞으로 내밀었다.


“네... 저... 그게... 당시 피고측은 알파벳을 결합한 브랜드 여러 개를 준비 중이었고... 그 첫 번째로 만든 게 D&G인데요... 이 말의 의미는 ‘돌쇠’의 D와 ‘갑순이’의 G를 결합한 것으로... 전통적인 우리문화를 좀 더 외국풍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판사는 놀란 듯 눈이 둥그래졌다.


“뭐요? 돌쇠와 갑순이요?”


판사가 큰 소리로 말하자 뒤에서 재판을 기다리던 다른 변호사들도 신기하다는 듯 나를 쳐보기 시작했다.

“허허 참... 갑돌이와 갑순이든지, 돌쇠와 순이든지. 이게 맞는 조합이지, 돌쇠와 갑순이요? 허허허,.,”

판사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리고는 법원 사무관에게 지시했다.

“사무관님, 변론조서에 기재해 두세요. 피고측 대리인 진술로, ‘D&G’는 돌쇠와 갑순이의 약자다. 라고. 허허허. 자, 이제 뭐 더 할 건 없지요?”


#8

과연 그 사건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되긴... 당연히 졌지. 결국 나중에 가서는 A사의 상표등록 자체가 무효로 되기까지 했다.

그 재판이 나오고 1달 쯤 지났나... 오랜만에 대학 동기가 전화가 왔다.

“어이, 조변, 오랜만이야.”

“응, 김변, 잘 지내지?”


“조변, 나... 그거 봤어. 법률신문에서... 돌쇠랑 갑순이. 하하. 재밌던데...”


이건 뭔 소리람. 난 급히 이번 주 법률신문을 펼쳐봤다. 법률신문에는 중간에 ‘금주의 중요 판결’이라고 나오고 판결문의 원문이 실리는 코너가 있는데, 거기에 딱 ‘돌쇠와 갑순이’ 판결이 실렸고, 당연히 그 대리인 이름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 마이.... 나의 흑역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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