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나의 버팀목 - 1편 ​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33) 나의 버팀목 - 1편

#1

“조변, 아직까지 EIH(황의인 변호사)에게 따로 인사 안드렸니?”

IP팀에 온지 1주일쯤 되었을 때 byh가 내게 물었다.

“제가 따로 인사는 못드렸고... 작년에 입사할 때 한번 뵙긴 했었는데.”

“IP팀 대빵님에게 인사를 아직 안드렸구나. 맞다. EIH 일본 출장 중이었지? 같이 가자.”

난 byh가 IP팀 대빵인 줄 알았는데 위에 더 높은 분이 계셨구나.

#2

“오, 앉아요. 조변호사. 내가 인사가 늦었네. 차 한 잔 합시다.”

아? 이 생소한 느낌은 뭐지? 태평양 선배 변호사들은 다들 바쁘다. 그래서 말이고 행동이고 전부 빠르다. 그런데 이 분은 느릿느릿 말씀하시고 행동하고, 표정도 온화. 선비 같았다.

명패에 있는 ‘황의인(黃義仁)’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와... 이름에 義와 仁이 다 들어 있다니. 놀랍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1980년 12월 판사 출신인 김인섭 대표변호사(ISK)가 서울 서소문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것에서 시작했다. 이후 김인섭 변호사와 뜻을 같이하는 이재식 변호사(JSL), 황의인 변호사(EIH)가 합류했고, 1986년 서소문 신야빌딩으로 이전하면서, 상호를 법무법인 태평양합동법률사무소로 변경했던 것이다. 실로 태평양의 시조새 같은 분.

EIH는 너무 긴장하지 말고 최대한 여유를 즐기면서 변호사 생활을 즐기라는 덕담을 해주셨다.

#3

그런 EIH가 내게 따로 전화를 했다. 사건을 같이 해 보지 않겠느냐는. 하늘같은 선배가 시키면 해야지. 나는 EIH를 따라 A캐피털 본사에 대표이사와 회의하러 갔다. 회의를 하는 동안 그 대표이사는 아주 날카로왔다. 무슨 말을 하려해도 가로막고 자기 얘기만 했다. 1시간 회의를 하는데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EIH가 설명했다. “저 대표가 다른 로펌 변호사로부터 자문받고 일을 진행했는데 그게 사실 문제가 되었나봐. 그래서 그 뒤치다꺼리가 필요해서 우리를 불렀는데, 기본적으로 변호사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있어.”

아니, 딴 데서 뺨 맞고 왜 우리에게 화풀이람? EIH는 예의 그 선비 같은 자세로 “변호사가 받는 돈에는 욕 얻어먹는 값도 있다고 생각하라구. 너무 괘념치 말고. 일에 집중하면 되네.”

A캐피탈은 M무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했다, 그런데 M무역은 김앤장의 아주 중요한 고객사였다. M무역 대표가 김앤장의 대표변호사와 인척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당연히 김앤장은 그 사건을 중요하게 다룰 터였다.

와... 김앤장과 한판 승부라. 초짜인 내가 말이지. 전투욕이 샘솟았다.

#4

첫 재판날. 나는 당연히 EIH와 같이 재판에 출석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전날 EIH는 도저히 빠질 수 없는 일본 출장이 잡혀버렸다. EIH는 “조변호사, 어차피 첫 기일은 소장 진술, 답변서 진술만 하고 간단히 끝날 테니 혼자 출정해주게.”라고 지시했다.

아... 혼자 법정에? 간단한 사건도 아니고 상대방은 김앤장인데. 왠지 김앤장이라는 이름 값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지 뭐. 징징댈 수도 없고.

법정에 나가서 보니 김앤장에서는 변호사 3명이 출석했다. 2명은 나이가 지긋한 중견 변호사, 1명은 젊은 변호사였다. 재판을 시작할 때 판사가 그 2명의 변호사와 가벼운 눈인사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서로 잘 아는 분위기?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재판은, 재판장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20분이나 진행되었다. 뒤에 알고 보니 이 재판부가 ‘집중심리 재판부’였다. 말 그대로 한 번의 기일에 사건을 깊이 파헤치는 그런 재판부다. 사건을 완전히 꿰고 있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소장만 쓴 상황이라 아직 깊은 내막까지는 스터디가 안 되었는데, 재판장이 이것 저것 물어보니 버벅댔다. 식은 땀이 났다. 상대방 변호사들은 나를 보고 아주 하찮게 웃는 듯 했다. 아, 좀 더 기록을 꼼꼼하게 볼 걸.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데, 3명의 변호사 중 막내 변호사가 나와 어깨가 부딪혔다. 내가 미안하다고 말하려는데 쓩~ 하고 가버렸다. 뭐냐? 너? 완전 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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