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byh에게 신임을 얻은 과정 - 1편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36) byh에게 신임을 얻은 과정 - 1편


#1

내가 IP팀으로 온 뒤 까칠하다고 소문 난 byh(황보영 변호사)와 잘 지낸다는 사실은 태평양 선배들에겐 다소 신기하게 받아들여졌다. 다른 부서 선배들은 날 만날 때면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게 말하곤 했다. “어때? 괜찮아? 힘들지 않아?” 난 아무 문제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byh랑 잘 지낸 이유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건 아마 1년차 때의 경험 때문이리라.


#2

로펌 입사해서 들은 말 중에 생소했던 것 중의 하나가 ‘듀데이트(due date)’였다.

선배가 자문건을 주며 내게 지시한다. “조변, 이 건은 듀 데이트를 이번주 금요일로 하자구.”

비서는 내게 리마인드 한다. “변호사님, 현대제철 자문건 듀데이트가 모레까지예요.”

배당받은 자문사건 파일 앞에 포스트 잇으로 ‘듀데이트 4/13(금)’와 같은 식으로 표시를 해 둔다. 말 그대로 due date는 그 일을 끝마쳐야 할 시간이다.

나름대로 답을 얻기 위해서 끙끙거리다 보면 due date를 못 지키는 일이 종종 있었다. 선배들은 내가 due date를 지키지 못하면 호되게 야단을 쳤다.

“변호사에게 due 는 생명과 같은 거야. 이걸 어기면 같이 일을 할 수가 없어.”

씨... 내가 놀아서 그런 것도 아닌데. 잘 해보려고 그런 거고. 또 중간에 갑자기 다른 선배가 일을 줘서 그것까지 처리하려다보니 그런 건데.

선배 HSL(이형석 변호사)가 말했다.

“KJJ(정강준)가 자네 동기 아냐? 걔는 due 잘 지키던데....”

선배 HK(강현 변호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야, KJJ는 같이 일해 보면 나이스하게 하던데. 비법 좀 물어봐.”

자존심 상했다. 나는 동기 KJJ 방으로 갔다.


#3

KJJ, 정강준 변호사. 이 친구는 경찰대학을 나와서 파출소장까지 하다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친구다. 경찰근무하면서 불철주야 공부를 한 친구. 사실 우리 입사동기 변호사들 중에 경찰대 출신이 1명 있다는 건 소문이 났었고, 비서들은 당연히 내가 경찰대 출신인 걸로 알았단다. KJJ는 하얀 피부에 선비같이 생겼고, 나는 덩치도 크고 얼굴도 까만 편이고 그래서...

“정변, 너 땜에 내가 더 야단맞는다. 얼른 내게 고해바쳐. 네가 일 잘하는 비법을 말이다.”

KJJ는 빙그레 웃으며, 나름의 비법을 알려줬다.


“넌 due date가 뭐라고 생각하니?”

“일을 끝내야 하는 날. 그게 due 아냐?”

“봐봐. 만약 선배가 목요일이 due라고 했다 치자. 그럼 언제까지 결과물을 가져다 줘야 할까?”

“목요일...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선배는 그 의견서를 마무리해서 의뢰인에게 보내줄 거잖아. 선배들마다 due 개념이 다르더라구. HSL 같은 사람은 의뢰인에게 보내줄 날짜를 due로 잡는 스타일이야. 그런데 HWP(박현욱 변호사) 같은 사람은 의뢰인에게 보내야 하는 날짜 하루 전날을 due로 잡더라구. 자... 그럼 HSL과 일을 할 때는 좀 더 빨리 움직여야겠지? 의뢰인에게 목요일까지 줘야 하는데, 조변이 목요일에 HSL에게 보고를 하면 HSL이 그 의견을 고쳐야 할 때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잖아?”


잉? 이 친구 대단히 디테일하고 예민하네? 속으로 감탄했다.


“경찰생활 하다보면 보고가 생명이야. 사전보고, 중간보고, 사후보고. 보고 제대로 못하면 엄청 깨지지. 난 그게 생활화됐어. 나는 선배들이 일을 주면 중간보고를 해. 목요일이 due라면 화요일 정도에 그 때까지 내가 생각한 내용을 정리해서(물론 아직 거칠지만) 선배에게 보고해. 그리고 선배의 의견을 물어봐. 자네도 인정하겠지만 1년차가 날고 기어봐야 선배들 발 뒤꿈치에도 못 미쳐. 선배의 지혜를 빌리는 게 현명한 거지. 중간보고를 하면 선배가 자기 생각을 말해줘. 대략 방향이 나오지. 그럼 내가 그 의견을 보완해서, 원래 예정되었던 due보다 하루 먼저 제출하지.”


- 이어집니다 -



정강준.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4) 나의 버팀목 - 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