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수임 잘 하는 비법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38) 수임 잘 하는 비법


#1

선배들과 상담하러 들어가보면 선배에 따라 상담을 진행하는 스타일이 다 다르다.

단도직입적으로 사건에 바로 돌진하는 타입.

세상만사 잡담을 아이스브레이킹 차원에서 하다가 천천히 사건으로 들어가는 타입.

강의처럼 화이트보드판에 판서하면서 설명 위주로 진행하는 타입.

회의 때마다 다양한 버전의 회의 스타일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2

그런 점에서 황의인(EIH) 변호사의 회의 진행방식은 좀 특이했다.

아이스브레이킹을 먼저 시작하긴 하는데, 항상 의뢰인의 가족상황, 건강상황을 주제로 올렸다. 그 이야기를 듣다보면 EIH는 의뢰인 개개인에 대해서 꽤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회의 시간이 다른 선배들보다 30분은 더 길었다. EIH랑 회의하러 들어가면 최소 1시간 30분은 걸린다고 각오하고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EIH 의뢰인들은 좀 특이한 데가 있었다. 그들은 EIH를 ‘참’ 좋아했다. 진정으로 EIH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능력있는 변호사가 자기 사건을 해결해 주고 있으니 업무적으로 리스펙트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EIH의 경우는 인간적인 부분이 많이 느껴졌다.

“EIH랑 같이 식사하러 가도 EIH는 제대로 밥 못 드시는 경우가 많아요. 점심시간인데도 의뢰인들이 그렇게 전화를 한답니다. 그리고 EIH는 그 전화를 끊지도 않으세요. 그거 일일이 다 받아주시거든요.”

EIH 비서가 해 준 말이다. 아... 의뢰인 응대를 정말 성실하게 하시는구나. 하지만 엄청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

태평양 내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사내 교육프로그램이 가동된다. 주로 외부에서 연사를 불러서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듣는데, 이번주 연사는 황의인(EIH) 변호사님이란다. 뭐지... 맨날 뵙는 분인데 무슨 강의를? 하기야 나는 같은 IP팀이라 자주 뵙지만 다른 변호사들은 자주 뵙지는 못할 테지. 근데 무슨 강의를 하신단 말인가?

찾아보니 이번 강의주제는 ‘의뢰인을 대하는 법’이라고 했다. 정보통 송 변호사가 전해줬다.

“몇 년째 우리 로펌 수임 1등이 황 변호사님이래. 완전 탁월한 탑 이래. 사건 수임을 잘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신다고 해.”

아, 그 정도이셨어? 의뢰인과 잘 지내시는 것은 알았으나 수임 1위라고? 흥미가 갔다.

파트너 변호사들은 사건 수임을 위해 고객관리를 하는데, 그 주요 고객은 중견기업의 법무팀장이나 법무팀원들이다. 식사도 하고 경조사도 챙기고, 주말엔 골프도 치고. 파트너들은 주말 내내 골프 약속이 잡힌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4

“거...참. 사건을 잘 수임하는 법을 강의해 달라고 하던데. 그런 방법이 따로 있지는 않은데...”

EIH는 다소 쑥스러운 듯 말을 꺼냈다.

“다만 내가 한 가지 놓치지 않고 하려는 게 있어요. 알고 지내던 법무팀 사람이 좌천을 당하거나 해고를 당하는 그런 일이 있어요. 의외로 사기업은 정치판과 비슷해서 어느 이사 라인인가에 따라 갑자기 승진을 하기도 하고 불이익을 당하기도 해요. 나는 그렇게 잘 안 풀린 사람들을 꼭 챙기려고 노력해요. 식사를 하기도 하고 전별금을 보내기도 하고. 또 다른 직장 자리를 알아봐주려 노력도 하고. 오히려 승진한 사람보다는 이런 사람들을 더 챙기려고 했어요. 뭐 꼭 뭘 바래서라기 보다는 안 됐잖아요? 자그나마 힘이 되 주고픈 마음?”

“그런데 사람일은 모르는 거라, 돌고 도는 것이 인생사이다 보니. 좌천되고 해고되었던 사람들이 사내 권력구조가 바뀌면서 다시 승진을 하거나 다른 회사로 가서 다시 법무팀을 맡게 되는 일이 있어요. 그럼 그 사람들은 다른 변호사 다 제쳐두고 나만 찾아요. 난 그저 그 분들에게 힘을 내라고 작은 관심과 성의를 표했던 것인데 그 분들이 그렇게 고마워하는 것을 보니 나 같은 사람이 많지는 않은가 보더군요.”


#5

그럴 것 같았다. 통상의 경우 변호사들이 자신들이 '관리'하던 고객들이 좌천되거나 해고당하면 관계가 헐거워질 것이다. 하지만 EIH의 경우 의뢰인을 관리의 대상으로 본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로 대하고 공감했던 것이다.

“이런 인연을 가진 분들은 무조건 나만 찾아요. 큰 사건이든 작은 사건이든. 작은 사건은 작은 로펌 가는 것이 금전적으로 유리하다고 해도 어떻게든 비용은 맞춰 볼테니 나보고 해달라고 해요. 허허”

저 구수하고 시골 어른 같은 양반이 수임 1위라니.

뭔가 고도의 전략, 전술이 있어서 수임 1위를 하시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네.

결국 진정한 인간관계, 공감, 배려와 같은 도덕책에서나 보던 가치가 여기에도 적용이 되네.

야...훌륭한 선배구나. 나도 저리 될 수 있을까? EIH는 모든 면에서 나의 큰바위 얼굴같은 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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