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46) 닷컴 열풍과 벤처사업에 대한 열망
#1
내가 IP팀으로 배속되어 주니어 변호사로 열심히 일던 1998년과 1999년.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닷컴 열풍이 불었다. ‘점 하나만 찍어도 달라 보인다’는 말처럼, 당시에는 회사명에 ‘닷(dot. 점)컴’만 들어가도 여기저기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는 신묘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byh는 이러한 사회적 열풍에 대응하고자 태평양 내에서 ‘벤처 컨설팅’ 파트를 만들자고 했고, byh의 부사수인 나는 당연히 그 팀에 포함되었다.
#2
하루에도 2-3개씩 신사업을 준비하는 벤처기업 경영진들과 미팅이 이어졌다. 신통방통한 사업모델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었고, 왠지 뻔한 모델이었지만 살짝 이미지만 바꾸어서 IT 벤처로서의 냄새를 풍기려는 그런 경우도 있었다.
그들이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한 것은 ① 자신들의 BM(비즈니스 모델)이 현행법상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검토 ② 투자유치과정의 컨설팅 ③ 회사 내 스톡옵션을 포함한 지배구조의 컨설팅 등이었다.
일반 소송, 자문사건과는 성격이 많이 달랐다. 우선 그들의 BM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중요했다. BM 설명을 듣다보면, ‘아, 저런 발상을 할 수도 있구나’라고 무릎을 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Creative가 저런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3
벤처 사업가들을 만나 회의하면서 새로운 BM을 접할 때마다 나 역시 많은 자극이 되었다. 그리고 사업을 구상하는 로직을 배울 수 있었다.
벤처 사업가들과 식사나 술을 하면서 그들이 살아온 과정, 앞으로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변호사가 참 멋진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었으나 ‘벤처 사업가’의 삶이야말로 미래지향적이고 멋지다고 여겨졌다. 나랑 비슷한 또래인 사업가들이 한 분야의 지축을 뒤흔들 야심찬 계획을 이야기할 때는 나도 빠져들었다.
#4
남이 하는 일은 더 좋아보여서 그런 걸까.
나도 ‘벤처 사업가’가 되고 싶었다. 변호사가 하는 일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미 터진 일을 뒷수습하는, 속칭 ‘뒷치닥거리 일’이 대부분인데, 사업가들은 새로운 방향으로 개척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아닌가. 변호사는 정답을 찾아가는 일을 한다면, 사업가들은 무엇이 정답일지 모르는 세상에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답을 ‘만들어’ 가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계속 고민했다. ‘내 수준에서 해볼 수 있는 벤처 사업은 없을까?’ 그런 고민을 가장 많이 했던 때가 1999년이었다. 내가 가장 익숙한 분야가 ‘법’이니 법과 인터넷을 결합한 사업이 뭐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온라인 서칭을 계속했다.
#5
그러다 미국의 Westlaw와 Lexis Nexis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판례와 법령, 논문 정보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사실 지금이야 판례와 법령은 대법원이나 법제처와 같은 공공기관, 그 외 여러 사설서비스에서 제공을 하고 있기에 그 사용에 불편함이 적다. 하지만 1999년 당시만 해도 법무 업무를 하는 변호사나 법무팀원들은 판례나 법령의 접근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이런 서비스를 시작하면 ‘법률 벤처사업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만의 BM을 만들어 보겠다며 잘 하지도 못하는 파워포인트로 그려가며 사이트 메뉴 구성을 해보았다. 그리고 그 자료를 가지고 주위에 IT 벤처를 하는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해봤다. 기술적 구현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쏘스(법령과 판례)를 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으로 사이트 구축을 위해서 큰돈이 필요했다.
6개월 정도 혼자 끙끙 앓았다. 우선 서비스 이름부터 정해야했다. 법이니 ‘Law’. 그리고 기본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의미에서 ‘Business’, 이 두 단어를 적절히 조합해 보려 했다. LawBiz, Law & Biz, Bizlaw 등 그리 창의적이지 못한 이름들을 두고 고민했다.
#6
혼자 생각만 해서는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 자본이 필요했다. 이제 사회생활 처음 하는 어린 변호사가 무슨 돈이 있었겠나. 나는 계속 고민하다 결심했다.
“태평양을 끌어들이자!!! 태평양으로 하여금 이 사업을 하게 해 보자!!”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 였다.
나는 파워포인트 자료를 계속 업그레이드 해 나갔다. 그리고 당시 업무집행변호사인 오용석 변호사(YSO)님을 독대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배짱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 나는 ‘벤처 열풍’에 단단히 감염되었던 것이다.
바야흐로 ‘로앤비 프로젝트'가 기지개를 켜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