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47) 그럼 자네가 종잣 돈을 모아보겠나?
#1
“난 조변이 갑자기 찾아오면 겁난다니까. 이번엔 또 무슨 일인가?”
오용석(YSO) 대표변호사님이 웃으면서 나를 맞아주셨다. 몇 달 전에 Y2K 프로젝트로 지구멸망을 심각하게 논의했던 적이 있었음을 기억하신 듯 했다. 오 변호사님은 태평양의 운영과 살림을 책임지는 COO.
나는 심호흡을 하고 준비해 간 PPT자료를 가지고 설명을 드렸다. 닷컴 열풍 시대를 맞이하여 우리 로펌도 법과 관련된 IT 벤처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미국에는 이와 관련한
성공적인 모델이 존재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열악하다, 이제 바로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등등.
#2
오 변호사님은 가만히 듣고 계시더니 “로마켓(Law Market)이나 로시컴(LawSee.com) 같은 서비스 말하나?”라고 물어보셨다.
“로마켓과 로시컴은 사용자들이 질문을 하면 회원 변호사들이 답변을 해주는 그런 상담 모델이라면, 제가 생각하는 모델은 컨텐츠 모델입니다. 법률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해서 이를 적절히 제공하는 그런 서비스라서 모델이 다릅니다. 이런 컨텐츠 모델은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사이트를 구축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이는 우리 로펌 정도의 규모가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아주 전문가답게 답변했다.
#3
오 변호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더니 “조변은 업무가 바쁘지 않나? 다른 주니어들은 본업만 해도 힘들다고 그러던데, 조변은 이런 딴 일(?)도 생각하고.”라며 훅 찌르셨다. 나는 표정관리를 했다.
“아... 저도 당연히 바쁩니다. 제 사수가 byh 아닙니까. 하지만 막상 벤처사업가들을 만나면서 회의를 하다 보니, 이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 로펌이 뭔가 IT에 강한 그런 느낌을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제안을 준비해 보게 되었습니다.”
“흠... 그래? byh도 알고 있나?”
앗! byh가 지금 알면 안 되는데... “아니요. 만약 오 변호사님께서 No 하시면 어차피 사장될 프로젝트기에 괜히 미리 byh께 말씀드리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4
오 변호사님은 PPT를 계속 뒤적이시더니 “조 변호사는 사업가가 되고 싶은 건가? 변호사 말고?” 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변호사 안 하고 사업가를 한다기 보다는 뭐랄까... 이런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입니다.”라고 답했다.
오 변호사님은 “사업을 하는데 그렇게 애매한 포지션으로, 즉 변호사도 하고 사업도 하고, 이런 식으로 해서 사업이 제대로 될까?”라며 정곡을 찔렀다.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의욕만 앞섰던 것일까.
오 변호사님은 나를 지극히 바라보시더니 물으셨다.
“그래, 그럼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네, 이게 사이트 구성하고 쏘스(법령, 판례) 확보하고 하려면 초기 자본이 필요합니다. 태평양이 자본을 대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 얼마쯤 필요할 거 같은데?”
“그래도 한 5억....은 있어야... 직원도 뽑아야 되고...” 난 말하면서도 내가 너무 아마추어 같아 보였다.
#5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파트너(시니어) 변호사들을 모아 줄 테니 그 양반들을 설득해 봐. 투자설명회를 하라구. 그래서 조변이 파트너들로부터 투자를 받아오면 그 투자받은 금액과 똑같은 액수를 태평양 로펌이 투자할게. 소위 매치 펀딩. 어떤가?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조변이?”
아... 내가 파트너들을 설득하라고? 그 깐깐한 변호사 선배들에게 투자하라고? 이 사업에?
“헉... 네... 그럼 제가... 준비 해 보겠습니다”
“한 열흘 정도 시간 주면 될까?”
“네...”
“그래, 그럼 열흘 뒤에 투자 설명회를 여는 것으로 합시다. 내가 준비시킬게. 한번 잘 해 보게.”
나는 무거운 어깨를 짊어지고 오 변호사님 방을 나왔다. 아...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부딪혀 봐야 한다. 이거 우찌해야 하나. 머리가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