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태평양이 인터넷 사업을 하는 의미

by 조우성 변호사

<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48) 태평양이 인터넷 사업을 하는 의미

#1

파트너 변호사들 대상으로 ‘로앤비 프로젝트’ 투자 설명회 날짜가 잡히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처음에는 편하게 생각했다. 누군가 이런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기하면 로펌 집행부에서 반가워하고 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줄 줄 알았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나는 몇 가지 조언을 하면서 적절히 그 사업 언저리에 발을 붙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용석 대표변호사님(YSO)은 아예 내가 사업 주체가 되어 초기 투자금(종잣돈)을 모아 볼 것을 지시하신 것이다.

조변, 자네가 파트너 변호사들을 설득해서 종잣돈을 모을 수 있다면 그렇게 모여진 종잣돈과 동일한 액수를 태평양 로펌에서 매칭 펀드로 모아주겠다. 적어도 그 첫 작업은 발제자인 조변이 하라. 는 말씀이었다.

#2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는 지당한 의견이었다. 내가 이 사업의 당위성과 사업성을 우리 내부 식구들에게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그게 어디 말이 되겠는가.

이론적으로는 지당한 이야기였지만 병아리 변호사 주제에 사업을 해 본 경험도 없는 상황에서 투자유치 설명회를 진행한다는 것은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 나의 오지랖이 내게 번뇌를 주는구나 싶었다. 내 발 등을 내가 찧은 셈이다.

#3

나는 내 사무실이 있는 역삼동 한국타이어빌딩 10층에서 테헤란로의 화려한 밤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야경이 멋있었다.

태평양이 서소문 시절을 끝내고 역삼동 테헤란로로 건너온 것이 작년(1998년) 9월이었다. 10여년 가까이 서소문동에 있는 빨간 벽돌건물 신아빌딩에 있다 이리로 이전한 것이다. 이전과 관련하여 내부적으로 말이 많았다.

1998년 당시는 IMF 외환위기 상황이었기에 로펌들의 재무상태가 다들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상당한 비용이 드는 강남으로의 이전을 결행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계속 되었다. 이러한 논쟁은 크게 송무 변호사들과 자문 변호사들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4

로펌은 크게 송무변호사와 자문변호사로 나뉘어진다. 송무파트는 재판(민사, 형사)을 주로 한다면 자문파트는 다양한 자문, M&A, 기업회생 등을 다룬다.

태평양은 ‘국내 의뢰인 위주의 송무가 강한 로펌’(토종 로펌)이라는 정평이 나 있었다. ‘외국 의뢰인 위주의 자문이 강한 로펌’으로 알려진 김앤장과의 특징적인 차이점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송무 변호사들의 발언권이 셌다. 하지만 스타급 변호사들(서동우, 오양호, 한이봉, 황보영 변호사)이 속속 태평양에 합류하면서 자문 사건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1998년 당시 전체 매출을 비교하면 송부가 70%, 자문이 30% 정도였는데, 자문쪽이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다.

#5

사무실 이전 요청은 자문파트에서 계속 제기되었다. 자문파트에서는 외국 기업 의뢰인들이 늘어나고 있고, 기본적으로 법률사무소가 외형적으로 봤을 때도 품위 있고 다소 럭셔리한 분위기가 풍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송무 변호사들은 ‘로펌이 일만 잘하면 되지, 사무실이 좋을 필요 뭐가 있는가’, ‘그건 다 허세에 불과하다. 실질이 중요하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위기 상황이니 긴축재정을 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렇게 두 파트가 서로 대립하고 있을 때, 당시 대표변호사이신 오용석 변호사(YSO)님이 집행부와 많은 논의 끝에 결정을 내리신 것. ‘강남으로 가자! 시설이 좋은 빌딩에 들어가서 제2의 창업 정신으로 임하자! 위기일 때 오히려 점프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역삼동 시대가 열린 것이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이 때의 강남 이전은 신의 한수가 되었다.

#6

어떻게 보면 내가 ‘로앤비 프로젝트’를 감히 태평양 집행부에 제안하려는 생각을 했던 것에는, 오용석 변호사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오 변호사님이라면 내 말의 뜻을 잘 이해해 주시고, 태평양이 나아가려는 미래 지향적인 모습을 고려한다면 로앤비 프로젝트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주실 거라 믿었다.

이제 오 변호사님이 기본 판은 깔아 주시기로 했다. 이제 내 차례다. 선배들을 과연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가 관건이다. 까짓,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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