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49) 투자 설명회를 앞두고 쌓여가는 고민
#1
로앤비 투자 설명회를 위해 준비를 해야 했다. 아직 태평양 내에서는 나 혼자 진행하는 프로젝트였으므로 누구의 도움도 얻을 수 없었다. 일단 로앤비 모델과 가장 유사한 미국의 ‘웨스트로’와 ‘렉시스 넥시스’ 관련된 다양한 재무자료와 통계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에서 법 관련 사이트로 가장 알려진 ‘로마켓’과 ‘로시컴’의 현황도 정리했다.
미국 자료를 자세히 검토할수록 ‘법률 정보 관련 사업’은 유망한 분야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만 하더라도 업무를 할 때 법령과 판례 검색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효과적으로 법령과 판례를 검색할 수 있고, 관련된 논문까지도 한꺼번에 찾아볼 수 있도록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면 변호사, 법무팀 등 법률 업무 종사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2
당시(1999년)만 하더라도 변호사들 중에 파워포인트를 직접 만지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나는 매뉴얼을 뒤져가면서 어설픈 실력으로 파워포인트에 필요한 자료들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준비를 하면서 나는 본질적인 고민이 들었다. ‘만약 투자유치 설명회가 성공해서 로앤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될 경우 나는 그럼 어떻게 되나?’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한쪽 발을 이 사업에 담궈 두는 모습을 처음에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 번 미팅에서의 오용석 변호사(YSO)님 분위기로 보면 그런 식의 아마츄어적인 접근은 불가능해 보였다. 막상 사업을 시작한다면 거기에 완전 투신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변호사로서의 내 커리어는 어떻게 되지?
#3
태평양 로펌에서 파트너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정해진 루트가 있다. 2년차에 어느 한 부서를 정해서 그 부서에서 4-5년차까지 실력을 쌓고, 그 후 미국 유학 가서 미국 변호사 자격증 딴 후 귀국해서 파트너가 되는 과정.
나는 예정대로라면 내년이나 내후년에 미국 유학을 갈 타이밍이다. 그런데 내가 로앤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면 유학도 포기해야 할 것 같고, 이 사업이 성공할 때까지 계속 사업만 한다면 내 커리어는 꼬이게 된다. 변호사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이 될 수 있었다. 이 부분이 고민이 되었다. 사업을 한다는 게 좀 멋져 보이는 일일 수 있는데, 그건 ‘가능성의 영역’이다. 하지만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 길은 사고만 안 치면 순탄하게 이를 수 있는 길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4
당시 현실적으로 내가 소속한 IP팀 업무에 대해서 약간의 회의, 내지는 권태감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byh(황보영 변호사)라는 훌륭한 사수가 있고, 업무 자체도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IP(지적재산권) 분야는 로펌에서 주류 파트로 보기에는 사이즈 측면에서 무리가 있었다. 또 IP 업무는 기술 관련된 부분이 많아서 기술전문가인 변리사들과 협업이 필수적이었다. 즉 변호사 혼자서 관련 법률 업무를 다 처리하기는 어려웠다.
이렇듯 다소 어정쩡한 포지션 자체가 업무 만족도를 다시 저감시키는 역할도 했다. ‘그래, 만약 로앤비 프로젝트가 제대로 탄력을 받아 내가 사업에 올인하고 변호사 업무를 못하게 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젊은 나이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생각을 할 만큼 그 당시 우리나라 닷컴 열풍 현상은 대단했고, 내게도 꽤나 큰 ‘헛바람(?)’을 주입시켰던 것 같다.
양쪽에 다 발을 걸치는 어정쩡함은 버리고 사업에 올인한다는 데 마음을 굳히니 모든 것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좋다. 이제 정면승부다.
#5
처음 해보는 투자설명회라 대본을 충실하게 썼다. 원래 신림동에서 강의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다고 자부했지만, 그때 강의와 이번 스피치는 내용이나 성격이 완전 다르다. 그리고 그 대상이, 깐깐하기 이를 데 없는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들이다. ‘의심을 하는 것’이 직업병인 그들을 대상으로, 아직 상품(사이트)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서비스에 대해 파워포인트와 내 설명만으로 설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정교한 대본을 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상되는 질문을 미리 뽑은 다음 그에 대한 답변도 세밀하게 준비했다. 드디어 투자설명회 당일이 되었다. 두둥~~!